마을발전기금 없앤 현곡면 가정2리, 귀촌인 손님 아닌 이웃으로 품어
원주민과 새 주민 절반씩 어울리며 집성촌에서 도농복합 마을로 변화
밭 연기·농기계 소리 갈등, 주민 간 대화와 참여로 풀어낸 도농복합 마을
이동건 가정2리 이장 “사람이 들어와 살기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
5일 오전 현곡면사무소에서 만난 이동건 경주시 현곡면 가정2리 이장. <장성재 기자>
경주시 현곡면 가정2리에는 조금 특별한 원칙이 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에게 마을발전기금을 받지 않는다. 대신 연회비 3만원만 걷는다. 마을 청소와 쓰레기 처리, 공동 행사에 쓰기 위해서다.
이동건 가정2리 이장(69)이 만든 변화다. 마을 안에서 돈 문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기준을 단순하게 정한 것이다. 현재 가정2리 이장과 현곡면 이장협의회장, 경주시 이통장연합회장을 함께 맡고 있다. 가정2리 이장으로는 올해 8년째다.
가정2리가 속한 가정리는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마을 안에는 갓질, 지곡, 마룡골 같은 옛 지명도 남아 있다.
또한 경주디자인고등학교가 있는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도심과 멀지 않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논밭과 오래된 집, 새로 고친 주택이 함께 섞여 있다. 한쪽에는 예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도시 생활을 접고 들어온 귀촌인들이 있다.
가정2리는 과거 집성촌 성격이 강한 마을이었다. 양동 여강 이씨 등 몇몇 성씨가 중심을 이루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만큼 마을 분위기도 조심스러웠다. 이 이장은 "예전에는 행동 하나도 조심스러울 만큼 마을 분위기가 엄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원래 살던 주민과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 50여 가구가 절반가량씩 섞여 산다. 평균 연령은 70세 이상이다. 젊은 주민 일부는 직장에 다니고 고령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는다.
농사 방식도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처럼 온 가족이 논밭에 매달리는 모습은 줄었다. 마을에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예전처럼 직접 농사를 다 짓기보다는 농기계를 빌리거나 다른 사람 손을 빌려 농사를 이어가는 경우가 늘었다.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은 대체로 50~60대가 많다. 도시 생활을 내려놓고 좋은 공기 속에서 살고 싶어 들어온 사람도 있고 아파트 대신 마당 있는 집을 찾아온 사람도 있다. 일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농촌 생활을 병행한다.
농촌마을에서 새 주민의 유입은 반가운 일이지만 갈등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낡은 집을 고쳐 별장처럼 꾸민 귀촌인과 오래된 방식으로 살아온 원주민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 마을발전기금이나 공동 행사비 문제도 작은 불씨가 되기 쉽다.
가정2리는 달랐다. 이동건 이장은 새로 들어온 사람을 먼저 안았다. 그는 "들어온 사람은 무조건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마을 일도 같이 맡기고 새마을지도자 같은 역할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새 주민을 손님처럼 두지 않았다. 마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일도 맡겼고, 책임도 나눴다. 그 결과 원주민과 귀촌인 사이의 벽은 낮아졌다.
마을발전기금을 없앤 것도 같은 이유였다. 처음 들어오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면 시작부터 거리감이 생긴다고 봤다. 대신 누구나 같은 기준으로 연회비 3만원만 낸다. 이 돈은 마을 공동 청소, 쓰레기 처리, 경로행사와 야유회 등 주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
특히 쓰레기 처리는 농촌마을 이장들이 자주 부딪히는 문제다.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대형폐기물이 나오면 스티커를 사 처리해야 한다. 명절 전후나 마을 청소 때도 공동 비용이 필요하다.
경주시 현곡면 가정2리 마을회관 전경. 가정리는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장성재 기자>
현곡면 일대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자연마을 사이에도 갈등이 생겼다.
농촌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파트 주민에게는 불편이 됐다. 밭에서 나는 소각 연기, 이른 아침 농기계 소리, 농촌 특유의 생활 리듬이 민원으로 이어졌다. 연기 신고로 소방차가 출동한 일도 있었다. 새벽부터 농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두고 "아이가 잠을 깬다"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이장은 이 갈등을 한쪽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자연마을 이장들을 모았다. 그리고 서로의 생활 방식을 설명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아파트 주민들도 비싼 집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불편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농촌의 생업과 문화도 함께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대립이 아니라 설명과 만남이었다. 아파트 행사에 자연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자연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산물을 팔 수 있는 직거래 장터를 열자는 제안도 나왔다. 서로 얼굴을 보자 민원은 줄었다.
가정2리처럼 고령 주민이 많은 마을에서는 전기불이 안 들어온다는 전화, 배수로를 봐달라는 부탁, 쓰레기 처리 문제, 혼자 사는 어르신의 안부까지 이장에게 모인다.
비가 오기 전에는 배수로를 살피고 마을 행사가 있으면 참석 여부를 챙긴다. 어르신이 혼자 지내는 집은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주민들에게는 면사무소보다 이장이 더 가까운 창구다.
그는 "어르신들이 냉장고에 있던 우유라도 한 잔 하라며 챙겨줄 때가 있다"며 "그런 생활 속 정 때문에 이장 일을 즐겁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정2리에는 학교의 기억도 남아 있다. 현재 경주디자인고등학교가 있는 자리는 과거 가정국민학교였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학교는 폐교됐고 이후 경주공고에서 분리된 특성화고인 경주디자인고등학교가 자리 잡았다.
학교가 있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아이가 귀하다. 마을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이장은 "지금 마을에 학생이라고 해봐야 중학생 두 명 정도"라며 "아이들이 귀한 마을이다 보니 어른들이 볼 때마다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챙기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돌 지난 아이 이야기도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가정2리의 미래를 거창한 개발에서 찾지 않았다. 이동건 이장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살기 좋은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미래의 마을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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