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시민의 삶과 교육을 무너뜨리는 총체적 재난이다. 그런데 전쟁은 멀리 있지 않고 남의 일만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광화문에서 BTS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불과 70여 년 전 6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겪었다.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아픔은 지금까지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군의 침략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 국가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戰勢)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 작전의 성공 뒤에는 하루 전인 1950년 9월14일 펼친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장사상륙작전에 772명의 대구·경북 14~17세의 학도병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투에 참여했다. 결국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다쳤다. 이 숫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린 학생들이 왜 그 길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학생들마저 참전해야 했던 비극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교육을 통해 무엇을 길러야 하는지 되묻게 된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한 코너에 소개된 계성고 사례가 질문에 답을 준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계성고 재학생 331명이 참전했다. 이들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남다른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다. 계성학교 40회인 참전 용사 고(故) 강정관님은, 당시 학생들은 '나라가 없는데 개인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스스로 '참전'이라는 답을 내린 '주체적 인간'들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려는 애국심과 용기, 극한 상황에서도 역할을 다하려는 책임감과 사명감, 또래 학도병들과 서로 의지하며 버텨낸 연대 의식의 발현이었다.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교육의 힘이 컸다. 당시 계성학교는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을 지향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인적 성장을 강조했다. 그 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한 예가 바로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학도병'들이었다.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국가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길러진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태도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실천으로 승화된 것이다.
AI 기술이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공동체를 위한 선택인지 스스로 성찰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인간의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무엇이 옳고 책임 있는 선택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교육은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회적 위기 앞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은 '국가를 향한 맹목적 충성'이 아니라, '내 삶의 터전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책임 있는 선택'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전쟁의 참상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성찰하며, 자기 삶 속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나아가 기후 위기, 사회적 갈등 등 현대사회가 마주한 다양한 위기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힘을 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학도병 정신의 진정한 계승이며, AI시대 우리 교육이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될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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