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보다 무서운 집중호우, 새로운 기후재난으로 부상
기온 1℃ 오르면 수증기 7% 증가…짧고 강한 비가 피해 키워
대구시는 지하차도·하천 통제, 경북도는 산지·소하천 대피 강화
지난해 7월 대구 북구 노곡동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자 경북119구조대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이용해 수색 및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남일보DB
기후재난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낸 가장 강력한 경고다. 삶 전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폭염과 폭우, 혹한 등이 발생하는 상황이 이젠 낯설지가 않다. 특히 대구경북은 국내에서 급변하는 기후 위기를 가장 혹독하게 겪는 '핫스팟(HOT+SPOT)'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형적 특성상 기후재난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을 지녔지만 그에 비해 방어력과 회복력은 약해서다. 우선 극한기후 패턴 중 극한호우(재난적 피해가 예상되는 기록적 집중호우)에 대한 지역의 대응법을 먼저 조명해 본다.
◆ 기온 1℃에 수증기 7%↑…커진 '하늘의 물탱크'
최근 대구경북 여름철 호우 흐름도는 예년과 다른 양상을 띤다. 정체전선 영향으로 여러 날에 걸쳐 지속된 장마철 비와 달리, 특정 시기에 폭우가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
2일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장마 기간(6월 말~7월 말)과 맞물리는 평년 7월 대구경북 강수일수는 14.2일이고, 평균 강수량은 235.6㎜다. 10년 전인 2015년 7월 강수일수는 15.0일에 평균 강수량은 195.1㎜였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엔 '양'에 비해 '호우 집중도'가 심화됐다. 강수일수는 7.6일에 그쳤지만, 평균 강수량은 200.5㎜로 비슷해서다.
이 같은 기후 변화는 대기와 바다의 변동성과 궤를 같이 한다. 최근 기상청이 발표한 '2024 기상연감'을 보면, 기온이 1℃ 오를 때 대기가 머금는 수분량이 약 7% 늘어난다. 통상 공기가 품을 수 있는 '물그릇'이 커지면, 비구름이 발달했을 때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는 물의 양도 커진다. 기상청의 '2025년 7월 대구경북 기후특성'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한반도 주변 해역 해수면 평균 온도는 24.6℃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다. 최근 10년 평균(23.3℃)보다 1.3℃ 높은 수준이다.
이를 기온 1℃당 대기 수분 보유량이 7% 늘어난다는 일반적 관계에 단순 적용하면, 당시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 잠재량은 최근 10년 평균 조건보다 9%가량 커질 수 있다. 실제 강수량이 곧바로 9% 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더워진 바다가 강한 비구름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확대된 건 분명해 보인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당시 3시간 동안 270㎜의 폭우가 쏟아지며 범람 피해가 발생한 포항시 남구 오천읍 냉천에서 복구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영남일보DB
점점 변화하고 있는 호우 흐름을 뒷받침할 만한 국내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린 박인기·서명석의 논문 '우리나라에서의 최근 30·50년 극한 강수 특성 현황 및 변화경향'을 살펴보면, 1973~2022년 충청·경기 일부를 제외하고, 대구경북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서 국지성 집중호우 강도가 증가했다.
계명대 김해동 교수(환경공학과)는 "장마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늦어지는 현상이 강수일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제 집중호우는 비가 많이 오는 현상을 넘어, 짧은 시간 지역 내 특정 공간에 내리는 기후재난으로 봐야 한다"며 "지난해 7월 대구경북에 강한 비가 내릴 때 상황을 분석해 보면, 상층의 찬 공기를 동반한 기압골이 영향을 줬고,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덥고 습한 공기가 계속 유입됐다. 위쪽 찬 공기와 아래쪽 덥고 습한 공기가 만나 대기가 불안정해졌고, 비구름이 강하게 발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북구 노곡동 제진기. 집중호우 때 빗물과 함께 유입되는 낙엽과 생활쓰레기 등 이물질을 걸러 펌프 고장과 배수 지연을 막는 역할을 한다. 구경모기자
◆ '시간 빼앗는 호우' …대구 '통제선', 경북 '대피선' 앞당겨
대구시와 경북도는 수해 후 대응 방식에서 탈피해 지역별 특성에 맞춘 사전 예방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극한호우 대응 핵심은 '시간'이라고 판단한 것.
대구시는 주택·지하차도·하천 둔치지역 침수와 고립 차단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발표한 '2025년 대구시 안전관리계획'을 보면, 대구 홍수위험지역은 4천973만㎡로 특·광역시 평균 3천50만㎡를 웃돈다. 올해 처음으로 재난안전기동대 20명을 꾸려 취약시설 예찰과 주민 대피에 투입했다. 동촌유원지 등 침수우려지역에는 119 특수구조대를 미리 배치키로 했다. 지하차도 24곳엔 국·시비 69억원을 들여 진입차단시설을 순차 설치 중이다. 호우 특보 때는 국가하천 3곳과 지방하천 34곳의 둔치 산책로 출입도 통제한다.
대구시 박희준 재난안전실장은 "극한호우 대응에 있어선 지하차도와 하천변을 얼마나 빨리 닫느냐가 중요하다"며 "재난안전기동대와 119 특수구조대를 침수 우려지역에 미리 투입하고, 지하차도 진입차단시설과 하천 출입 통제를 연계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도는 산지와 소하천 주변 마을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산사태 피해 제로'를 목표로 622억원을 투입, 사방댐(100개소)·계류보전(60㎞)·산지사방(24㏊)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방도 배수시설과 집수정, 도로 침수·유실 우려 구간 점검도 병행한다.
산악 기상 관측망도 보강했다.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33억원을 들여, 김천 등 9개 시·군 82개소에 산악 기상 관측망을 구축했다. 비구름대 위치와 강도에 따라 계곡 수위와 사면 상태가 급변하는 만큼, 관측 공백을 줄여 산사태 예측과 주민 대피 판단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경북도 김진현 안전행정실장은 "사방댐과 계류보전 시설 정비뿐 아니라 산악 기상 관측망, 마을순찰대, 이장·자율방재단 중심의 대피 체계를 함께 운영해야 한다"며 "재난문자 발송에 그치지 않고 누가 주민을 확인하고, 어떤 통로로 어느 대피소까지 이동시킬지까지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7일 찾은 대구 북구 침산·산격지구 빗물펌프장 증설 공사 현장. 최근 몇 년 새 극한호우가 반복되면서 대구시는 저지대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빗물펌프장 배수 용량을 늘리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경모기자
◆ 전문가 "기후자료, 현장 판단 기준으로 바꿔야"
전문가들은 극한호우 대응에서 기상자료를 단순 예보 정보로만 취급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강수량보다도 그 비가 어느 지형과 시설에서 어떤 위험으로 이어지는지를 사전에 구분해야 한다는 것.
경북대 강남영 교수(지리학과)는 "같은 비가 내려도 대구 도심의 지하차도와 하천변, 경북 산지 마을과 소하천 주변이 받는 위험이 다를 수 있다"며 "관측자료와 지형, 하천, 도로, 주거지 정보를 함께 놓고 실제 위험 지점을 좁혀가는 방식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는 물이 모이는 도심 저지대와 지하공간, 경북은 계곡과 소하천을 낀 마을처럼 위험이 커지는 공간이 다르다"며 "지역별 위험 지도를 더 촘촘히 만들고, 이를 통제와 대피 판단에 바로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소방 대응도 달라진 호우 양상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피해 신고 접수 후 출동하면 접근로가 막히거나 구조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커서다. 대구보건대 백찬수 교수(소방안전관리학과)는 "최근 호우 현장에선 침수, 고립, 토사 유출, 도로 통제가 짧은 시간에 겹쳐 발생할 수 있다. 어느 도로가 먼저 막히고, 어느 지점에 구조 요청이 몰릴지를 미리 예상해 출동 동선과 통제선을 잡아야 한다"며 "특히 반복 침수 지역, 하천변 진입로, 산지 마을처럼 위험이 예상되는 곳은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부터 움직이는 구조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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