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서울본부장
'가랑~잎~ 이 휘날~리는~'으로 시작하는 '전선야곡'은 1952년 6·25전쟁 중에 나온 분단가요다. 12차례나 주인이 뒤바뀐, 백마고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지전'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영화 속, 변성기도 채 지나지 않은 신병이 가녀린 목소리로 '정~ 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라며 구슬프게 부르는 구절에선 함께 듣던 전우는 물론 영화관 관객까지 심금을 울리게 했다.
지난 6·3 지방선거 유세 마지막 날 김부겸 후보가 대구 중구 동성로 옛 대백 앞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눈물의 '전선야곡'을 불러 화제가 됐다. 군인으로 퇴역한 선친의 애창곡이라고 노래를 소개하고 작년에 작고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거칠고 쉰 목소리로 절절하게 이 노래를 불렀는데, 한 지지자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김부겸은 45.05%의 득표율로 결국 낙선했지만, 민주당 후보로서 험지보다 더한 사지(死地) 대구에서 새로운 서사를 썼다.
선거유세 기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을 보며 대구의 유권자는 물론 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어떤 이는 우리 곁에서 사라진 노무현이 다시 환생하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선거가 한 달여 지났지만, '전선야곡'의 여운은 애틋하게 남아 지지자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얼마 전 대구 수성구 상동네거리에서 '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이름으로 '김부겸 총리님, 힘내세요. 대구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쓴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선거 후 약 한 달간 대구가 쓰라린 날들의 연속이라 할 만큼 처참한 상황을 맞고 있는 요즘, 김부겸이 지역을 떠나지 말고 대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달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실제 지난달 9일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지방선거까진 TK 행정통합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신문 기사를 필두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800조 투자' 'TK 미래신산업 소외위기' 'TK 경제 고립 현실화' '이러다 대구 다 죽는다' '대구는 영남권 투자서도 패싱' 'TK 청년 떠난다' '참패만 남았다' 'TK는 또 찬밥신세' 등 대구경북지역 대다수 신문에 보도된 머리 기사 제목은 대구시민으로 하여금 무력감을 넘어 우울증에 걸리게 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낙선해 상심한 김부겸에게 "낙선 공약(?)도 지켜야 한다"고 억지를 쓴 언론이 있어 놀랐다.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부턴 민주당 후보들은 대구에서 발을 못 붙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만, 이는 아이를 유산한 비운의 산모에게 아이를 살려내라는 생떼이거나 '죽은 자식 XX 만지는 격'이다. 부조도 하지 않은 문상객이 초상집에 가서 비싼 음식 내어달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책임정치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사람과 그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고 자신들이 내걸었던 공약과 정책을 실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 게 요체다. 당선자들과 그 주변 세력이 그렇게도 시정을 이끌어갈 자신과 결기가 없다면 차라리 김부겸을 대구시장보다 더 크게 써서 대구를 발전시켜달라고 대통령께 집단청원을 하는 게 맞지 않나. 대통령도, 민주당도 김부겸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 은거한 야인에게 사지에 나가달라고 요구할 땐 언제고, 지금은 '모르쇠'라고 한다면 누가 또 감히 대구에 나가겠는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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