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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파주의 ‘LG로’, 구미의 빈자리

2026-07-10 06:00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정부의 '5극 3특' 실행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지역 간 경쟁은 구호가 아닌 실행전략으로 평가받게 된다. 어느 지역이 예산을 더 확보하느냐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왔는가." 기회는 균등하게 선언될 수 있지만, 성과의 닻은 준비된 곳에 먼저 내려진다.


최근 호남권으로 반도체 생태계가 집중되는 현상을 두고 대구·경북의 아쉬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빈 땅이 있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인력, 물류망, 협력기업 생태계가 결합해야 움직인다. AI 시대 첨단 공장은 전기를 먹고 자라는 숲과 같다. 호남권이 에너지 전환과 미래 산업의 토양을 일궈온 노력이 결국 기업을 이끄는 유인책이 됐다. 이것이 전략의 힘이다. 오늘의 정책이 내일의 서류에 그치지 않고, 10년 뒤 기업이 찾아올 필연적 이유가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은 구미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때 구미는 대한민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심장이었으나, 대규모 신규 투자의 축은 파주로 옮겨갔다. 파주에는 'LG로'가 뻗었고, 협력기업과 R&D 기능이 결집했다. 구미가 잃은 것은 공장 몇 동이 아니었다. 일자리와 청년, 협력업체, 도시의 자부심이 함께 흔들렸다.


더 뼈아픈 것은 그 과정에서 놓친 우리의 태도다. 당시 대기업이 구미에 추가 공장용지를 요구했을 때, 토지 매각과 세수 확보 논리가 장기 산업전략보다 앞섰다는 평가는 지금도 아픈 대목이다.


필자는 구미 현장에서 그 아픔을 보았다. 매년 2천 명의 청년이 떠난다는 통계는 숫자가 아니었다. 불 꺼진 원룸촌, 손님이 끊긴 식당, 채용을 포기한 협력업체 대표들의 한숨이었다. 파주 주변에 새 둥지를 틀던 중소기업들의 근심을 보며 깨달았다. 지역의 소멸은 산업의 축이 이동하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파주의 'LG로'를 보며 상상한다. 만약 구미 4·5공단 한가운데 그 길과 생태계가 자리 잡았다면 어땠을까. 청년이 머물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함께 성장하는 다른 미래도 가능했을 것이다.


경북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도 이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나무를 다시 심는 차원을 넘어 피해목 활용 바이오매스 에너지, 산림 치유 관광, 분산에너지 마을과 고령 친화형 공동주거를 묶어 새로운 생활권을 설계해야 한다. 복구는 과거 회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집을 짓는 미래지향적 재창조여야 한다.


'5극 3특' 시대, 대구·경북의 자산은 빈약하지 않다. 구미의 반도체, 포항의 이차전지, 대구의 로봇, 경주·울진의 원전 자산은 연결하면 강력한 메가시티 산업지도가 된다. 이제 광역지자체의 구상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디에 에너지와 인력을 배치할지, 어떤 기업을 앵커로 삼고 어떤 협력기업을 키울지 확실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여기에 '기술금융의 사다리'도 필수적이다. 대기업 유치만으로 지역산업은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전환투자에 나서도록, 담보가 부족해도 기술성과 성장성을 평가해 마중물을 대는 기술보증기금 같은 기관의 역할이 요구된다.


준비되지 않은 지역에 기회는 머물지 않는다. 구미의 빈자리와 산불의 상처를 미래전략의 출발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대구·경북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다음 10년, 기업과 청년이 이 땅에 머무를 확실한 이유를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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