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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울릉도 처녀는 산삼을 캐고…” 노래 한 곡에 새겨진 섬의 역사

2026-07-11 17:45

사라질 뻔한 울릉도아리랑, 김재조 옹의 마지막 육성으로 되살아나다…가사마다 담긴 개척민의 삶과 공동체의 기억

지난 1994년 민요 채록 작업에 참여해 자신의 육성을 남긴 김재조 옹. <울릉문화원 제공>

지난 1994년 민요 채록 작업에 참여해 자신의 육성을 남긴 김재조 옹. <울릉문화원 제공>

"울릉도 처녀는 산삼을 캐고, 제주도 처녀는 해삼을 딴다."


구수한 가락이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장단을 맞춘다. 그러나 이 노랫말 속에 울릉도의 역사와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울릉도아리랑은 단순한 향토민요가 아니다. 척박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바꾼 개척민들의 노동과 애환, 공동체의 정서가 세대를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울릉도는 오랫동안 바다에 고립된 섬이었다. 풍랑이 이는 날이면 뱃길이 끊겼고 주민들은 가파른 산비탈을 일구며 삶을 이어갔다. 산에서는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바다에서는 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한 것은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울릉도아리랑은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태어나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이어졌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언제 불리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악보도 없었고 기록도 없었다. 사람의 기억이 곧 문화유산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젊은 세대가 육지로 떠나면서 울릉도아리랑도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한때는 밭일을 하며, 명절과 잔칫날 자연스럽게 불리던 노래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어르신조차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사라질 위기의 노래를 붙잡은 것은 울릉읍 사동리 김재조 옹의 목소리였다. 평생 울릉도아리랑을 불러온 김재조 옹은 1994년 민요 채록 작업에 참여해 자신의 육성을 남겼다. 이 녹음은 현재 전해지는 울릉도아리랑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가 됐다. 만약 당시 채록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울릉도아리랑은 원래의 가락과 노랫말을 상당 부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울릉도아리랑 가사. <울릉문화원 제공>

울릉도아리랑 가사. <울릉문화원 제공>

민요는 건축물과 다르다. 문화재는 복원할 수 있지만 노래는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민요는 기록보다 전승이 더 중요하다. 울릉도아리랑의 가사는 울릉도 사람들의 생활을 압축한 기록이다.


'울릉도 처녀는 산삼을 캐고 제주도 처녀는 해삼을 딴다'는 대표적인 대목은 두 섬의 생업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울릉도에서는 산나물과 약초 채취가 중요한 생계수단이었고, 제주에서는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다. 짧은 노랫말 안에 서로 다른 섬 문화가 녹아 있는 셈이다.


특히 노랫말 곳곳에는 척박한 산길을 오르내리던 개척민들의 삶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공동체의 모습도 담겨 있다. 글보다 노래가 먼저였던 시절, 울릉도아리랑은 섬사람들의 생활을 기록한 구전 역사책이었다.


오늘날 그 노래를 가장 가까이에서 이어가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황효숙(울릉읍 사동리.58) 명창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울릉도아리랑을 배우고 무대와 학교, 지역 문화행사에서 꾸준히 전승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울릉도 지역 행사장에서 황효숙 명창이 울릉도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홍준기 기자>

최근 울릉도 지역 행사장에서 황효숙 명창이 울릉도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홍준기 기자>

황 명창은 "울릉도아리랑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런 노래가 생겼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가사 한 줄 한 줄에는 산을 일구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다시 부를 때 비로소 문화유산은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왜 울릉도에서는 산삼을 캤을까요?" 정답을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노랫말을 통해 울릉도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는 순간, 민요는 공연이 아니라 교육이 되고 문화유산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울릉도아리랑을 지역 정체성이 가장 뚜렷하게 담긴 향토민요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전국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서도 섬이라는 독특한 환경과 개척민의 삶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오늘날 울릉도에는 천연기념물과 오래된 문화재가 많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도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진 노래, 그리고 그 노래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김재조 옹이 남긴 한 줄기 육성이 씨앗이었다면, 오늘도 울릉도아리랑을 배우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 씨앗을 키우는 손길이다. 울릉도아리랑은 오래된 민요가 아니다. 섬이 걸어온 시간이며, 울릉도 사람들이 살아낸 삶의 기록이다. 그 노래가 계속 불리는 한 울릉도의 역사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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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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