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영아를 품어온 심금숙 원장이 전하는 '천천히 키우는 용기'
저출생 시대, 부모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양육법
심금숙 칠곡군립 휴포레어린이집 원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마준영기자>
아침 7시 30분, 경북 칠곡군 왜관읍 군립 휴포레어린이집.
현관문이 열리자 부모 손을 잡고 들어온 영아가 엄마와 떨어지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교사는 아이를 품에 안아 등을 토닥였고,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한동안 흐느끼던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치고 교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아침 풍경이다. 하지만 그 짧은 몇 분은 아이가 세상을 믿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심금숙(54) 군립 휴포레어린이집 원장은 말한다. "아이는 천천히 키워도 됩니다."
담담한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영아들과 함께한 16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 원장은 2015년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보육 현장에 뛰어들었고, 올해 1월 군립 휴포레어린이집 원장으로 부임했다. 교사 경력까지 합치면 16년째 영아들을 돌보고 있다. 수백 명의 아이를 품에 안으며 성장 과정을 지켜본 그는 누구보다 아이의 속도를 믿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수백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저출생 극복에 나서고 있지만 부모들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심 원장은 그 이유를 경제적 부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부모들을 만나 보면 더 큰 문제는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입니다." 그는 부모들의 고민이 지난 10여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남들보다 더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영어와 코딩, 예체능 교육은 물론 각종 체험활동까지. 부모들은 아이에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쉼 없이 달린다. SNS에는 다른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은 점점 커지고, 출산은 축복보다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된다.
"아이를 사랑할수록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오히려 부모를 지치게 합니다.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 갖는 것 자체를 망설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천천히 키우는 용기'다. "아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합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 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아기의 '애착'이다. "0~2세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얼마나 빨리 가르치느냐보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훨씬 중요합니다."
애착이 충분히 형성된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고, 스스로 놀이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배우기 시작한다. 반대로 불안이 큰 아이는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성장의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 오랜 현장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그래서 휴포레어린이집 교사들은 교육 프로그램보다 먼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고, 충분히 안아주는 일을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로 삼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언제든 돌아와 안길 수 있는 부모입니다."
국가의 역할도 빼놓지 않았다. 심 원장은 저출생 문제는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보육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부모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국가의 지원과 부모의 사랑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꿈꾸는 어린이집은 특별하지 않다. 부모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아이는 마음껏 뛰놀며 하루를 보내고, 교사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곳. 화려한 교육보다 따뜻한 품이 먼저인 공간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등원을 마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가득 퍼졌다. 조금 전까지 울던 아이도 친구들과 장난감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심 원장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남겼다. "아이를 너무 완벽하게 키우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천천히 키워도 아이는 충분히 잘 자랍니다."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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