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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밑줄 사용법

2026-07-15 06:00
신보라 소설가

신보라 소설가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페이지 문장이다. 정말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을까.


우리가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추는 순간. 한 문장을 다시 읽고, 한 번 더 읽는다. 그리고 연필을 든다. 우리는 그 문장 아래에 조용히 밑줄을 긋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책 한 권에는 수만 개의 문장이 있는데, 왜 하필 그 문장이었을까.


좋은 문장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다.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도 아니고, 비유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문장은 발견된 문장이다. 설명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문장을 붙잡는다.


누군가는 사랑에 관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누군가는 이별을 다룬 문장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계절을 묘사한 한 줄에 오래 머문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는 이유는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지금의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그 문장은 영원한가.


시간이 지나면 밑줄도 달라진다. 언젠가 표시해두었던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읽어가거나, 왜 이 문장을 그냥 지나쳤지 되물으며 연필을 들고는 한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보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나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요즘은 책보다 SNS에서 문장을 더 자주 만난다. 잘라낸 한 줄의 문장들이 빠르게 공유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 물론 좋은 문장은 혼자서도 빛날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문장은 조금 다르다. 그 문장은 이미 수십 페이지를 지나왔기에,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기에 비로소 완성된다. 맥락을 떠난 문장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원래의 깊이를 모두 품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밑줄을 긋는 일을 좋아한다. 그것은 작가에게 보내는 찬사가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남기는 편지 같은 것이니까. 언젠가 다시 그 책을 펼쳤을 때, 왜 이 문장이 좋았는지 기억나지 않음에도 그 밑줄은 분명히 내게 말해줄 것이다.


'이때의 너는 이런 사람이었어.'


어쩌면 우리가 밑줄을 긋는 이유는 하나의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장을 만난 순간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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