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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장 발언대] “어르신의 발이 되고, 외국인 근로자의 벗이 되고”…박상철 이장의 ‘사람 농사’

2026-08-07 15:19

교통 불편한 어르신 직접 태워 민원 해결…스마트농업 배우는 ‘공부하는 농부’
베트남 계절근로자 9명과 한집살이…2023년 수해 때는 軍 지원 이끌어 복구 앞장

봉화군 법전면 소천1리 박상철 이장이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황준오기자>

봉화군 법전면 소천1리 박상철 이장이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황준오기자>

농촌에서 이장의 역할은 행정의 끝자락이 아니라 주민 삶의 최전선에 있다. 봉화군 법전면 소천1리 박상철 이장은 그 최전선을 '사람을 챙기는 일'로 채워온 농촌의 생활형 리더다. 어르신에게는 발이 되고, 외국인 계절근로자에게는 가족이 됐으며, 수해가 덮쳤을 때는 주민보다 먼저 복구의 손길을 불러왔다. 자신의 농사에는 스마트농업을 배우며 변화에 대응한다. 그의 이장 생활을 관통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사람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법전면에서 나고 자란 박 이장이 이장직을 맡은 이유도 단순하다. 고령화가 깊어진 고향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자신이 마을 어른들의 손발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박 이장은 "법전의 가장 큰 자산은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 온 끈끈한 정"이라며 "어르신들이 불편한 일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장 업무는 회의에 참석하고 행정사항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법전면 외곽지역은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해 하루 한두 차례 버스에 의존해야 하는 곳도 있다. 고령의 주민에게 면사무소나 병원을 오가는 일조차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 때문에 행정업무를 보거나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어르신이 있으면 자신의 차량에 직접 태워 면사무소까지 모셔다드리는 일이 잦다. 행정과 주민 사이의 거리를 자동차 한 대와 부지런한 발품으로 좁히고 있는 셈이다.


그는 "젊은 사람에게는 차를 타고 잠깐 다녀오면 되는 일이지만 어르신에게는 하루를 잡아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내가 조금 움직여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이장은 마을을 돌보는 동시에 수박과 고추 농사, 송이 채취와 임업까지 병행하는 농업인이다. 계절마다 일이 바뀌고 사실상 연중 농작업이 이어지지만, 농사 역시 경험에만 기대지 않는다.


특히 이상기후가 농업 현장을 빠르게 바꾸면서 그의 농사법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수박과 고추 재배에 토양 미생물과 비료를 과학적으로 활용해 온 그는 최근 국립안동대학교 농업 분야 스마트팜 관련 최고경영자(CEO) 과정을 수료했다. 여름을 넘어 가을까지 이어지는 고온 등 달라진 기후에 기존 경험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사는 평생 해도 계속 배워야 한다. 예전 경험만 믿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기후가 달라지고 기술도 바뀌는 만큼 농민도 공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박 이장의 '사람 중심 농사'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2024년 수박과 당귀 농사를 위해 베트남 국적의 라이 씨(42) 등 계절근로자 9명을 고용한 그는 이들을 단순한 노동력으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생활을 챙겼고, 쉬는 날이면 봉화의 명소와 인근 지역을 함께 찾았다. 봉화송이축제에도 동행했다.


낯선 나라에서 농번기 노동을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고용주와 근로자라는 관계보다 '함께 먹고 일하는 식구'라는 관계가 먼저 형성됐다.


박상철 봉화군 법전면 소천1리 이장(왼쪽 세번째)이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을 통해 함께 일한 베트남 근로자들과 수박밭에서 수확한 수박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준오기자>

박상철 봉화군 법전면 소천1리 이장(왼쪽 세번째)이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을 통해 함께 일한 베트남 근로자들과 수박밭에서 수확한 수박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준오기자>

그 인연은 계약이 끝난 뒤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라이 씨는 한국에서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박 이장을 자신의 고향으로 초청했다. 박 이장은 지난 2월 일주일간 베트남을 찾아 다시 만났다. 계절근로를 통해 시작된 인연이 국경을 넘은 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 이장은 "농번기에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지냈을 뿐인데 한국에서 받은 정을 잊지 않고 초청까지 해줘 오히려 고마웠다"며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계절근로자 제도가 오래 지속되려면 사람을 단순히 필요한 시기에 데려왔다가 돌려보내는 인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농가와 근로자가 서로 믿고 존중하는 관계가 만들어져야 제도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위기의 순간에는 그의 행동력이 더욱 두드러졌다.


2023년 집중호우 당시 소천1리 오미길 일대 10여 가구의 주택이 침수되고 토사가 밀려드는 피해가 발생했다. 6·25 참전용사 임도학 옹(93)의 집도 뒷담이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


박 이장은 거동이 불편한 임 옹을 대신해 긴급 대민지원을 요청했다. 이후 육군 50사단 일격여단 영주봉화대대 김태경 예비군지휘관과 201여단 지원대장 등 장병 30여 명이 현장에 투입돼 토사를 걷어내고 축대를 임시 복구하는 한편 비닐하우스와 농작물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탰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수해로 삶의 터전이 망가진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 우리를 돕고 있다'는 희망이었다"며 "군 장병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준 덕분에 주민들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박 이장의 이야기는 초고령 농촌에서 이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행정과 주민을 연결하는 전달자를 넘어 고립된 어르신의 이동권을 보완하고, 재난 때는 외부 지원을 끌어내며, 외국인 근로자와 지역사회 사이에서는 문화적 간극을 좁힌다. 여기에 변화하는 농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배우는 일까지 멈추지 않는다.


박 이장은 자신의 역할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면 좋겠습니다. 누구든 다시 찾아오고 싶은 법전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장을 맡고 있는 동안은 주민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는 일꾼으로 남겠습니다."


인구가 줄고 사람의 빈자리가 커질수록 농촌에서는 한 사람의 역할이 더 무거워진다. 어르신의 발이 되고, 이주노동자의 벗이 되고, 재난 앞에서는 마을의 방패가 되는 것. 박상철 이장이 법전면에서 짓고 있는 가장 오래 남을 농사는 어쩌면 작물이 아니라 '사람 농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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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오

현장의 작은 변화 속에서 지역의 미래를 읽는 보도로 봉화의 오늘과 내일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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