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소, 어르신 16명 오전·오후 교대 근무
참기름으로 올해 상반기 매출 5천759만원 올려
“전문성 띠는 노인일자리 자존감 회복에도 도움”
고령화시대를 맞아 노인 일자리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소득 보전을 위한 단순 노무 작업에서 탈피해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 회복을 돕는 '사회가치형 일자리'로 질적 향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 이 같은 인생 2막의 장을 펼칠 전제 조건은 '웃음이 넘치는 따뜻한 일터'다. 대구에선 중구 동산동 한 골목에서 고소한 참깨 냄새로 골목을 채우는 '마실방앗간'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대구 어르신들이 함께 일궈낸 마실방앗간의 찬란한 기록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노인 일자리의 청사진을 들여다봤다.
◆'마실방앗간'에서 행복을 찾다
5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동산동 노인일자리사업장 마실방앗간에서 진남철 어르신이 적외선 온도계로 볶아지는 참깨의 온도를 확인하고 있다. 김민진 수습기자
"친구들에게 한 번씩 밥도 사고, 손주들 용돈도 챙겨줍니다. 무엇보다 집 밖에 나와 일하니 삶에 활력이 돕니다."
5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동산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자 고소한 참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냄새의 근원지는 '마실방앗간(지난해 11월 개소)'. 작업장 안에 들어서자 앞치마와 위생모, 마스크를 갖춰 입은 어르신 4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소쿠리에 담긴 참깨 6㎏을 볶고 이물질을 골라낸 뒤 착유기에 넣어 기름을 짜고 병에 담는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이어졌다. 맡은 공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오래 손발을 맞춰온 듯 움직임에는 막힘이 없었다. 작업장 안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탓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의 표정에서는 힘든 기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신이 만든 제품이 세상에 유통되는 과정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며, 어느 때보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게 어르신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적외선 온도계를 한 손에 든 채 볶아지는 참깨 온도를 세심하게 살피던 진남철(79) 어르신은 "참깨를 볶는 일이 단순해 보이지만 저온 압착은 165℃, 고온 압착은 210℃로 온도와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며 "일에 몰두하다 보면 4시간이 금세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쓰레기 줍기 등 다른 노인일자리는 일을 마쳐도 결과물이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아 보람을 느끼기 어려웠다"며 "이곳에서는 직접 생산하고 포장한 완제품이 나오니 뿌듯하다. 참기름을 사서 친구나 가족에게 선물했을 때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보람찬 일이 없다"고 웃음 지었다.
함께 있던 박안나(여·70)어르신도 "집에만 있다 보니 무료하고 우울해져 중구시니어클럽에 직접 연락해 일할 만한 곳이 없는지 문의했더니 마침 마실방앗간이 문을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며 "방앗간 일은 처음이었지만 오랫동안 살림을 해온 경험 덕분인지 금세 적응했다. 이제는 나도 반전문가가 다 됐다"고 했다.
◆경제적·정서적 자립 순기능 '마실방앗간'
5일 오전 대구 중구 동산동 노인일자리 사업장 '마실방앗간'에서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갓 짜낸 참기름을 병에 옮겨 담고 있다. 안성태 수습기자
마실방앗간은 문을 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초기 판로가 비교적 빠르게 자리 잡힌 편이다. 현재 어르신들이 하루 평균 생산하는 분량은 약 100병. 이 제품은 인근 식당과 반찬 제조업체, 공공기관·사회복지시설 등에 납품된다. 올해 상반기 참기름 판매로만 5천759만8천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명절(9월 추석)을 앞두고는 선물용 참기름 주문이 몰리면서 이달부터 하루 근무시간도 기존 4시간에서 5시간으로 늘어나 매출 상승도 기대된다.
대구 중구청은 '마실방앗간' 작업 규모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신규 판매처 발굴과 판로 확대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성장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중구청 복지정책과 이상률 어르신복지팀장은 "당초 활용되지 않던 건물 공간을 '마실방앗간'이란 노인일자리 사업장으로 전환해 중구시니어클럽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수익금은 참여 어르신들의 임금과 사업 운영비로 사용된다"며 "마실방앗간의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자 홍보 캠페인 등을 통해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하고 판로를 넓히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마실방앗간 사례처럼 전문성을 띠는 노인일자리가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민간과 공공 간 협력을 통한 '장기 구조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구가톨릭대 나지훈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환경정비나 단순 안내 등 비교적 단순한 역할에 머물렀던 기존 노인일자리와 달리, 어르신들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동료들과 협업하고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소득 보전을 넘어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동체사업단이 단기 사업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지역 상권·관광자원 연계 등을 통해 수익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어르신의 신체 여건을 고려한 작업환경과 근무체계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