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순 전 경북대학교 초빙교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독재 체제가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사전에서 단어를 없애는 일이다. 이른바 '신어(Newspeak)'의 도입이다. 언어는 인간의 관념과 가치를 담는 그릇이자, 사유를 도출하는 틀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언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라는 기호, 그 형식이 없이는 개념 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따라서 언어를 통제당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존재할 것인가를 지배당하는 것과 같다. 소설에서 다양한 기록을 왜곡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기억은 언어를 통해 저장되고 언어가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권력이 인간의 언어를 축소하고 통제하려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생각, 사유를 통제하는 것이고 인간 본연의 주체성을 약화하는 일이다. 단어 자체를 지워버리면, 체제에 반하는 의식이나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인간이 사유할 수 없게 된다. 언어를 없애거나 새로 만들거나 하는 의도는 결국 체제가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언어 통제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인 것이다.
최근 글로벌 대중문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방탄소년단(BTS)의 뉴스 속에서 오웰이 경고한 언어 통제의 그림자를 본다. BTS 멤버 전원은 내년에 열릴 그래미 어워즈에 자신들의 곡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고 권위 시상식의 트로피를 사전 보이콧한 것이다. 화제의 도화선은 그래미 주관사가 신설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때문이었다. 그래미 측은 아시아 음악의 글로벌 영향력을 '포용'하기 위한 '새로운 상'이라며 명분을 세웠다. 권력은 언제나 배제를 포용이라는 언어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는 다양성의 확장이 아니라, 오웰의 소설의 신어처럼 K팝의 개념을 특정 카테고리로 묶어두려는 의도는 아닐까. 전 세계 주류가 된 이들에게 너희는 보편적인 팝(Pop)이 아니라 '아시안 팝'일 뿐이라며 선을 그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득권을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언어의 틀로서 이들을 격리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추론을 해본다.
과거 그래미는 흑인 아티스트들이 뛰어난 팝이나 R&B 앨범을 발표해도, 그들의 음악을 어반(Urban)이라는 범주에 별도로 분류하는 관행으로 비판받았다. 이는 보편적 음악이 아니라 흑인 음악으로 구획 짓는 경계라는 지적을 받았고, 음악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끝에 결국 폐지했다. 이후 팝스타 위켄드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은 그래미의 구조적 편향을 비판하며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라틴 음악이 세계적 인기를 얻었지만, 그래미는 메인 시상식의 포용성을 확대하기보다 라틴 그래미 어워즈를 별도로 신설했다. 이를 두고 라틴 음악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주류 시상식과 분리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번에 신설된 '아시안 팝'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BTS는 권력이 설계한 프레임에 갇힌 시상을 거부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이들의 선언은, 스스로 새로운 언어가 되겠다는 주체성의 선언이다. 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는 문화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역시 끊임없이 타인에게 '라벨(단어)'을 붙여 진영을 나누고, 생각을 제한하며 의식을 통제하려 든다. 달콤한 기득권의 룰을 깨버린, 탑티어의 결단은, 빛나는 명성 뒤에 숨겨진 통제와 차별을 향한 묵직한 일침이다.
돌이켜보면 BTS를 키운 것은 메이저 미디어, 빅브라더가 아니었다. 기존 체제의 외면 속에서도 전 세계의 수많은 개인이 SNS와 유튜브라는 개인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번에도 전세계 '아미'들은 각자의 SNS를 통해 자신들의 뮤즈를 향해 지지와 공감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안 팝이든 그냥 팝이든, 그래미가 상을 주든 말든, 월드컵은 올해도, BTS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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