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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보폭을 맞춘다는 것

2026-08-10 06:00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도시는 늘 앞을 향해 달린다.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횡단보도로 쏟아져 나온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저마다의 하루가 분주히 건너간다. 그 바쁜 흐름 속에서 유난히 천천히 움직이는 손수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수레 위에는 종이보다 살아온 세월이 더 높이 쌓여 있는 듯했다. 신호가 바뀔까 조급해하지도,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보폭으로 한 걸음씩 길을 건넜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보폭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며 자꾸만 다른 사람의 걸음과 자신을 비교한다. 누군가는 이미 멀리 앞서 있는 것 같고,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걸음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은 앞사람을 따라가는 경주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만의 걸음을 지켜 가는 긴 여정이다.


노인의 걸음에는 오랜 세월이 배어 있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숱한 계절을 건너며 몸에 새겨진 시간의 리듬이었다. 느린 걸음이 아니라 그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보폭이었다. 그제야 동행의 의미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같은 속도로 걷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걸음을 인정하고 보폭을 맞추는 일이다. 앞선 사람은 잠시 기다려 주고, 뒤에 있는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할 때 길은 경쟁이 아니라 동행이 된다.


가족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부부 또한 평생 같은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보폭을 맞추며 한 생을 건너간다. 누군가 지치면 다른 한 사람이 걸음을 늦추고, 누군가 멈추면 말없이 곁을 지킨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기다려 주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의 보폭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우리 걸음에 맞춰 주었고, 성장해서는 친구가 곁을 지켜 주었다. 어느 날에는 배우자가, 또 어느 날에는 이름 모를 이웃이 잠시 속도를 늦추며 함께 걸어 주었다.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다 건넌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길을 이어 갔다. 사람들은 금세 그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살아온 시간은 걸음에 남고, 살아갈 시간은 다시 그 걸음 위에 놓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몇 걸음이 아니라 얼마나 서로의 보폭을 맞추어 주었느냐로 정해진다. 인생은 먼저 도착한 사람보다 끝까지 함께 걸어 준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 어쩌면 동행이란 같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아끼며 끝까지 같은 계절을 건너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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