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오후 늦은 시간 마트는 많이 붐볐다. 나처럼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안 된다는 엄마의 흔한 실랑이를 보면서 "우리 애들도 어릴 때 저랬었지" 미소 짓다가 엄마가 아이의 뺨을 후려치는 광경까지 보고 말았다. 초등학교에도 안 갔을 조그만 여자애가 휘청하도록 심하게 때렸다.
교육을 위해, 또는 교육적으로라는 핑계를 대면서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 "버릇이 없어서" "길을 잘 들이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주로 대는데 이런 식이라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훈육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는 말은 최악의 변명이다.
어린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차분하게 가르치고 부모의 삶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교육은 노력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걸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 세상의 누가 자신을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부모라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의 부족함과 아이의 미숙함이 만나 충돌하는 지점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폭언, 폭행이 행해지는데 어떤 장면은 평생을 두고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즉각적인 개선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시적인 변화를 만들어줄 뿐 부작용이 더 많다. 폭력은 강도가 점점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 징벌의 수단으로만 작용한다.
"아버지는 항상 웃는 모습이었어요. 내가 빵점을 맞아도, 친구하고 싸워서 학교에 불려갔다 오셨을 때도, 지갑의 돈을 슬쩍 했을 때도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셨어요. 암세포가 번져서 통증이 심했을 때도 제 얼굴을 보면 애써 웃어주셨어요.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해요."
아버지 임종을 못 봐서 불효했다고 자책하던 분께 고인이 생전에 어떤 분이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생각해봤다. 오래전, 아이 넷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날 동네 문구점에 매를 사러 갔었다. 혹시나 해서 갔는데 '사랑의 매'가 여러 종류 있었다. 그중 하나를 사 들고 나오는데 문구점 여주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미워하는 마음은 담지 마이세이~" 그날 이천 원짜리 사랑의 매는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미워해서 때리려던 게 아니었으니, 사랑한다면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오래 기다려 주는 게 맞는 일 아닌가!
나는 어떤 부모로 기억될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가끔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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