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592년 8월14일 우리나라 수군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의 40척, 전라 우수사 이억기의 25척, 경상 우수사 원균의 7척 판옥선이 승리의 주역이었다. (경상 좌수사 박홍은 도주하고 없었다.) 이순신은 '견내량 파 왜병 장'을 써서 조정에 보고했다.
장계는 이순신의 치밀한 성품과 부하들을 아끼는 지휘관다운 자질을 잘 보여준다. "순천부사 권준- 큰 배 1척, 장수 포함 참수 10, 포로 1명 되찾음, 광영현감 어영담- 큰 배 1척, 장수 생포, 참수 12, 포로 1명 되찾음, 사도첨사 김완- 큰 배 1척, 장수 포함 참수 16(하략)"
72척 전함으로 왜선 115척과 접전을 벌여 단숨에 63척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전과가 대단했으니, 그에 따라 이순신이 보고해야 할 내용도 많았다. 이런 기록은 세밀해야 하고, 논리가 명쾌해야 한다. 이순신은 장졸들의 전공을 하나하나 서울에 알림으로써 그들이 이룬 만큼 상훈을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이순신은 장계를 쓸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쾌한 기분이었을 터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한탄할 만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왔다. 이제 한 차례 전투가 끝나고 장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없이 상을 내려달라고 신청하게 되었다. 지휘관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으리라.
이순신은 '난중일기'의 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난중일기'가 국보 및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꼼꼼한 기록이 한 몫을 했다. 이순신은 교전 상황, 개인적 소회, 날씨, 지형, 서민들의 생활상까지 상세히 적었다. 사령관이 전투가 끝나면 책상에 앉아 이토록 다방면의 기록을 직접 남긴 사례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수준급 문장과 여러 편의 훌륭한 시를 선보여 문학적 가치도 높다. 보기 드문 임진왜란 수군 전투사인 데다 당대 동아시아 국제 정세도 담고 있어 해전사 및 세계사 연구의 사료로서도 가치가 인정된다.
재차 강조하자면, 꼼꼼하게 적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데 골몰해서도 안 된다. 관심의 눈길을 그늘지고 외진 곳에까지 두어야 한다. 섣불리 평가를 내리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가는 '역사'가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