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년간 주택 실거래 전수조사
거래 금액 높을수록 거래도 활발
스스로 몸집 불리며 노후자산 되거나
거래 안돼 자산 묶이는 지방도시 빈집
우리 사회에 또다른 불평등 만들기도
전문가 “집 바라보는 시선 바꿔야 해”
대구 수성구 법이산에서 바라본 수성구 지역 아파트 전경. 영남일보 DB
은퇴를 맞이한 60대 이상 부모세대에게 '집'은 노후를 책임질 든든한 자산이고, 3040세대에게는 계층을 건너는 사다리입니다. 어쩌면 모두의 '생존'이 걸린 것이어서, 집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집이 만들어 내는 세대·계층·지역 간 격차가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든다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공정'의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극단적 예이긴 합니다만, 독일처럼 누구나 임대주택에 산다면 집은 그저 '사는 곳'으로 되돌아오겠지요. 이제, 집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물어야 할 시점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인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재건축 아파트 청약에서 아이돌 가수가 추첨제로 당첨됐다는 소식이 얼마 전 알려졌습니다. 강남권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탓에 대출 규제가 엄격해 자금 조달 부담이 큰 지역입니다.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가 당첨된 아파트는 시세차익 최소 18억원이 기대돼 '로또 청약'으로 불립니다. 당첨도 어렵지만, 계약은 더 어렵습니다.
전년말 대비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 전국 10개 지역. <자료 : 한국부동산원>
분양가는 전용면적 84㎡(33평형·국민평형) 타입 기준 최고 22억4천450만원. 계약금으로 현금 4억5천만 원과 매달 수백만 원의 중도금 대출 이자와 잔금이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자금력을 갖춘 이들만 청약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이죠. 논란은 이 지점입니다.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고, 부양가족이 많지 않아 가점이 낮은 청년을 위한 청약 추첨제가 '가진 사람'에게만 열린 기회로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확인한 최근 서울 강남권(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아파트의 당첨 가능선은 70점을 훌쩍 넘습니다. 무주택기간 15년 이상으로 만점(32점)을 받고, 청약통장 가입기간 최고점수(17점)를 받아도 부양가족이 많지 않으면 70점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을 더해 만점은 84점입니다. 청년이 가점제로 당첨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추첨제를 열어뒀지만 정작 추첨제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대상은 제한되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취지의 '분양가 상한제'는 되레 자산 격차의 기폭제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전년말대비 집값 하락폭이 큰 전국 10개 지역. <자료 : 한국부동산원>
대구에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30대 직장인 김명호씨는 "평생 직장생활로 모을 수 없는 돈을 현금이 있는 사람들은 시세차익으로도 축적하게 되는데, 집을 가지는 하는 기회가 정말 모두에게 공정한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정부의 가계대출총량규제로 대출이 막혀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었습니다. 서민들은 금융권 도움 없이 지방에서 집 한 채 사는 것도 어려운데, 고소득 자산가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지요. 청년세대에 박탈감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김 씨처럼 대출을 받지 못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해 정부는 대안을 고민중입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총량관리 전체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무주택 실수요자와 청년, 신혼부부 등 서민을 위한 대출 방안을 찾겠다"며 핀셋 지원을 예고했습니다만 사다리를 놓친 청년들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노후 자산, 혹은 환금성 잃은 '빈 집'
국토연구원이 2024 행정안전부 빈집 행정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빈집 지도 <출처 국토연구원>
최근 10년 사이 빈집 비율 추이 (단위:%) <출처: 국가데이터처>
"현장은 생각보다 아주 심각합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구시회 이명민 회장이 털어놓은 말입니다. 내 집을 장만해야 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대출 규제와 높아진 대출이자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서울 현금부자 말고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르지 못하거나 제2 금융권에서 대출을 해결하더라도 높은 금리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매수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있는 사람만 계속 가지게 되죠. 지역적으로나 세대 간 격차는 고착화될 수 있습니다."
공인중개사로 현장에서 직접 뛰는 이 회장의 경고는 집이 또다른 불평등을 만든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크게는 서울과 지방, 작게는 지방도시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죠. 집값은 2022년 말과 비교하면 서울은 평균 17.7% 올랐습니다. 송파구나 성동구, 성남 분당 상승률은 40%를 넘습니다. 이쯤되면 서울 집은 노후를 보장할 든든한 자산이 되겠지요. 같은 대구 집값은 자산 방어조차 못한 채 평균 18%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거래라도 되면 다행인데 지방 집들은 거래조차 되지 않고 기능을 잃은 채 '빈 집'으로 전락하고 있어 더욱 문젭니다. 실제로도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빈 집'은 서울에서 멀수록 많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빈집애(愛)'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빈 집'은 전국적으로 전남광주특별시가 2만3천537호로 가장 많고, 전북 1만9천495호, 경북 1만8천145호, 경남 1만5천834호 순입니다. 광역시인 대구에도 6천100호에 이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집값 정점에 있는 강남구와 서초구에는 빈 집이 한 곳도 없습니다.
'빈 집' 비율 역시 서울은 3.9%에 그치지만 전남 15.2%, 제주 14.6%, 강원 13.4%, 경북 13.2%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구 역시 7.7%로 서울의 약 2배입니다. '빈 집' 비율은 최근 10년 동안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높아져 대구는 2015년 4.0%에서 7.7%, 경북은 10.9%에서 13.2%로 껑충 뛰었고요, 서울은 2.8%에서 3.9%로 10년 간 1.1%p 증가에 그칩니다.
더 큰 문제는 '빈 집' 분포도에서 확인했듯 지역에 따라 매매 거래량도 차이가 확연하다는 점입니다.
영남일보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통해 대구에서 최근 10년 간 이뤄진 주택 매수 실거래건을 전수조사했습니다. 분석결과 ㎡당 거래금액이 높은 지역에서 거래도 가장 많다는 사실입니다. 거래가 활발한 곳은 환금성이 좋아 필요에 따라 매매해 언제라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자산이 되지요.
올해 7월말까지 이뤄진 매매건수는 수성구 범어동이 655건으로 대구에서 가장 많습니다. 수성구에서는 범어동에 이어 만촌동(276건) 황금동(210건) 순을 나타냈습니다. 지난해도 범어동 실거래건은 1천247건으로 대구 유일하게 1천건을 넘겼습니다. 범어동 평균 매수가격은 ㎡당 1천158만2천원. 역시 대구에서 가장 높습니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는 중구도 대장아파트가 있는 남산동에 거래가 집중돼 올해 7월까지 429건으로 가장 많습니다. 2022년 133건에 불과했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더 많은 거래가 이뤄지는 순환이 일어났죠. 단위면적당 매매가도 2022년 539만7천원에서 올해는 716만8천원으로 32.8% 상승합니다.
반면 도단위 시·군까지 보지 않더라도 대구 조차 거래가 끊겨 소유주가 처분조차 할 수 없는 집들도 상당수입니다. 최근 10년간 실거래에 등록된 대구 행정구역 150곳 중 올해 5건 미만 거래가 기록된 지역이 26개 동(리)에 이릅니다. 매매 거래가 되지 않는 지역에선 보통 노후 자산인 '집'이 묵여버리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구 동구 입석동에 거주하는 70대 후반 최정호 어르신의 사연이 그러합니다. 3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어 거주하는 빌라(연립주택)를 처분키로 했으나, 2년째 매수 문의조차 없습니다. 집을 판 돈을 앞으로 생활비로 쓰고 싶지만, 거래가 되지 않아 자금이 묶여버린 '자산의 덫'이 되었지요. 실제로 동구 입석동 전체에서 올해 거래건은 5건에 불과합니다. 지난해에도 11건에 그칩니다.
서울과 지방 간 격차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기형적인 자산 쏠림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소유' 중심의 주택 정책 패러다임을 '거주'로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노진철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대안은 이렇습니다. "40대 이상에게도 집은 노후대책의 하나로 더 좋은(가치가 오를) 상품을 확보하려고 하죠. 우리가 은퇴 후에도 한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 복지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노후대책으로 더 좋은 집을 사두려는 현상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독일처럼 임대주택이 보편화되면 집으로 계급이 나뉘는 일도, 집으로 인한 또다른 불평등을 만드는 일도 줄어들겠지요."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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