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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 하우스] ①괴물이 되어 버린 집, ‘사는 곳’은 ‘사는 것’이 되다

2026-03-29 09:25

대구서 ‘중위수준’ 집 사려면
가구소득 한 푼 안쓰고 7년 모아야
생활비 쓰고 저축해 집 사려면 40년
주택보급률 100%↑ 자가거주율 60%
누군가에겐 높은 허들, 자산가엔 자산증식

내 집은 어디에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주거와 의료, 문화 등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대구 남구 앞산전망대를 찾은 한 시민이 시내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내 집은 어디에'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주거와 의료, 문화 등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대구 남구 앞산전망대를 찾은 한 시민이 시내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강남. 대한민국 최고 부촌이죠. 한강 이남 지역을 일컫는 강남은 그저 지정학적 의미뿐일까요. '사는 곳'으로 시선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강남은 지명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이고, 넘볼 수 없는 계급의 상징이 됩니다. 누군가에는 선망의 훈장,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기도 하죠. 그저 '사는 곳'이 강남일 뿐인데 말입니다. 어디 이게 강남뿐일까요. '대구의 강남' 수성구가 또 그러합니다.


'어디에 사세요'. 평범한 질문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라는 본질의 물음을 앞서 갑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지보다 '어디에'에 매몰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시간을 조금 돌려보겠습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개그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익숙하죠. 멜로디를 따라가면 어쩐지 어릴 적 놀던 집 앞 골목이 보입니다. 주택 사이의 좁은 골목에서 공기놀이며 비석치기하고 뛰어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꼬맹이들은 가로등의 따뜻한 불빛이 켜질 때쯤, 대문 밖으로 나온 엄마의 부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죠. 학교 가는 길은 또 어땠나요. 친구네에 들러 "00야 학교 가자"며 대문 앞을 서성이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집은 대체로 나란했습니다. 오늘날 풍경은 어떤가요. 나란한 집들 사이 정겨운 골목이 있던 자리는 '숫자'로 존재감을 알리는 아파트가 있죠. 이때부터가 아니었을까요. '사는 곳' 집이 '사는 것'이 되기 시작한 게 말이죠.


1980년대 후반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민간 아파트들이 앞다퉈 들어섭니다. 나란하던 우리네 집은 위·아래층이 있는 아파트처럼 수직성으로 변합니다. '숫자'로 가치가 달라지고 '계급'도 붙습니다. 그렇게 아파트 공화국이 시작됐고, '사는 곳'은 '급지'로 변해 1급지니 2급지니 하는 서글픈 수식이 붙습니다. 집의 고유 가치가 투자상품으로 옮겨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사둔 서울 아파트는 몇 달 사이에도 수억씩 불어나고, 평범한 아파트도 수십억 원을 호가하죠.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을 손에 쥐는 청년세대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입니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끔 하는 원인도 됩니다. 상실감은 청년세대만 느낄까요. 대구만 해도 미분양은 쌓여있고, 집값은 오늘도 떨어지는 중입니다. '사는 곳'은 평범한 지방에 사는 사람을 '벼락거지'로 만드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사는 곳과 사는 것의 '집'을 영남일보가 뜯어보려 합니다.


대구 남구 앞산전망대에서 본 아파트 단지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대구 남구 앞산전망대에서 본 아파트 단지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집은 많은데, '내 집'은 없다


여기 대구에서 나고 자란 30대 후반 미혼 여성 A씨가 있습니다. 월세 80만원의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A씨는 2023년 수성구 외곽의 5억후반대 미분양 아파트 한 채를 계약합니다. 월세가 부담스러워 무리해서라도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내 집 마련의 꿈에 젖어 있던 A씨는 입주를 앞둔 지난해 돌연 계약을 해지합니다. 물론 계약금 5천여만원도 포기하죠. A씨가 계약한 아파트는 미분양이 줄지 않아 장기 전세임대가 검토됐습니다. 가뜩이나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임대 전환까지 되면 분양가조차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고민 끝에 집을 포기한 겁니다. A씨는 '똘똘한 한 채'를 위해 씨드머니를 모으는 중이라 전했습니다. 5천여만원이 큰 돈이지만 장기적으로 '똘똘한 한 채'를 갖는 게 자산을 늘려줄 것이란 신념이 있었죠.


계약금 수천만원과 주거안정성 둘 다를 포기하며 무주택을 택한 A씨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대구가톨릭대 부동산경영학과 서경규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집, 넓게는 부동산이 가진 속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집은 주식이나 다른 재테크 수단과 비교해 장기적으로 무조건 오를 것이란 확신을 갖게 하죠. 특히 서울과 지방, 지방에서도 양극화가 커지고 있어 우량 상품인 '똘똘한 한채'로 수요가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2023년 대구는 미분양이 급증하던 때입니다. 그해 2월에는 1만3천987호까지 불어 2010년 이후 최고치로 기록됩니다. '미분양 무덤' 꼬리표가 붙을 정도였죠. 미분양은 집값을 끌어내립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을 보면 대구는 2023년 11월 4주부터 2026년 3월 4주 현재까지 121주 연속 브레이크 없는 하락세입니다. 그래도 '될 곳은 된다'는 부동산시장 공식처럼, 오를 곳은 오릅니다. 수성구 범어동과 중구 남산동처럼 급지 좋은 대장아파트는 신고가를 냅니다. 서울은 강남3구·마포·용산구 할 것 없이 올라 1년 전보다 8.7% 상승했습니다. 19년 만의 최고 상승률인데, 송파구 상승률은 20.9%나 됩니다. 10억 아파트라면 2억1천만원이 올랐단 의미입니다.


우리 '사는 곳'은 연일 떨어지는데 또 어떤 '사는 곳'은 오릅니다. 평범한 직장인의 몇 년치 연봉이 쉽게 불어나니, 달리는 말 위로 올라타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볼까요. 사회학자 경북대 노진철 교수의 말 입니다. "돈, 자본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돈이 더 돈을 만들어 내죠. 근로소득은 돈이 만들어내는 자산 증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자산 증식 대표 수단인 아파트로 자본이 집중되면서 값이 더 오르는 굴레가 계속될 수 밖에 없어요. 한국사회의 특성 교육열과도 맞물립니다." (집과 교육의 상관관계는 후속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픽=염정빈 기자

그래픽=염정빈 기자

◆봉급쟁이는 살 수 없는 집


집은 삶의 터전, 안식처라는 고유 가치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삶의 터전인 집은 열심히 일하고 모아서는 살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중위수준 소득을 가진 가구에서 집을 사려면 얼마나 걸릴지 살펴볼까요.


'PIR(Price to Income Ratio)'. 주택가격을 가구전체 소득으로 나눈 값이죠. 자가가구의 주택구입 부담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국토교통부 최근 자료인 '2024 주거실태조사'에서 대구는 6.7배입니다. 가구 전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6.7년 모아야 2억5천만원 수준인 대구 중위가격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울은 13.9배까지 높아집니다. 통계를 벗어난 현실은 더 냉혹합니다. 생활비를 쓰면서 소득 30%를 모은다고 가정하면, 집 사는 데 서울에선 40년, 대구는 20년 이상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거죠. 끔찍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신한지주 미래전략연구소의 '집값이 안정되면 달라질 것들' 보고서는 한국의 체감형 PIR을 24.1배로 봤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덴마크는 약 10배. 주요국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습니다. 한국에서 집은 근로소득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되니, 결혼과 출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주택가격이 1% 상승하면 이듬해 출산율은 0.002명 감소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집이 나라의 미래가 달린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니, 이쯤되면 집이 괴물이 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영남일보가 국가데이터처를 통해 확보한 '거주지역 및 연령별 무주택가구' 통계를 보겠습니다. 2024년 대구 무주택 42만4천864가구 중 30세 미만은 6만7천826가구, 30~39세는 7만6천458가구에 이릅니다. 30대 이하 비중이 34%에 달할 만큼 타 연령층을 압도합니다. 청년 세대에 '주거 사다리'를 뺏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넘지 못할 허들


집은 왜, 근로소득을 모아도 사기 힘든 것이 되었을까요.공급이 부족한 걸까요.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 확정 공개한 '신(新)주택보급률'에 힌트가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주택보급률은 전국 평균 102.9%. 가구 수 이상의 주택이 보급된 겁니다. 대구를 볼까요. 1995년 71.2%에 그칩니다. 참고로 그 시절 서울 68.0%, 전국 평균은 86.0% 입니다. 공급이 부족하던 시절이죠. 2000년대 들어서도 보급률은 80~90%대, 2008년(100.2%) 처음 100%를 넘깁니다. 2010년 103.3%, 2014년 106.2%와 같이 꾸준히 100%를 상회했고 2024년 105.4%가 됩니다.


빈집도 쌓입니다. 준공후 미분양은 올해 1월말 기준 대구에 3천156호 있습니다. 주택 공급은 이미 100%를 넘지만 청년과 서민에게 '내 집'은 그저 꿈입니다. 높은 분양가와 은행 이자는 넘지 못할 허들이 됩니다. 대구의 평균 분양가, 얼마나 될까요. 지난 2월 기준 ㎡당 913만9천원. 체감하기 쉽게 평(3.3㎡)으로 환산하면 평당 3천15만원입니다. 소득 한 푼 쓰지 않고 중위수준(약 2억5천만원) 집 마련에 6.7년 걸리는데, 평당 3천만원 넘는 집을 사려면 도대체 몇 년을 모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넘지 못할 담장을 가진 아파트는 부자에겐 자산 증식 도구가 됩니다.


통계청 '2024년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자산 상위 1% 다주택자가 소유한 주택 수는 평균 7채가 넘습니다. 상위 10%로 범위를 넓히면 10분위는 평균 2.3채 가졌습니다. 대구에서도 집을 소유한 개인 76만5천321명 중 3건 이상 가진 소유자가 1만8천479명에 이릅니다. 집이 자산 증식을 위한 '사는 것', 투자상품이 됐다는 설명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가점유율이 이를 뒷받침하죠.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다시 보겠습니다. 본인 소유 집에 실거주하는 비율은 58~60%로 절반을 조금 웃돕니다. 대구 자가점유율은 2024년 전국 평균(56.9%)을 넘는 59.3%, 서울은 48.1%입니다. 2010년 대구는 55.5%, 2015년 58.7%, 2020년 58.4%, 2024년 59.3%로 조금씩 높아집니다. 청년 자가점유율은 2023년 14.6%, 2024년은 12.2%에 오히려 줄었습니다. 공급은 충분한데 청년의 자가점유율은 왜 떨어졌을까요. 성벽이 더 높아진 거죠. 다음 편에서는 집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계급을 나누는지 뜯어 보겠습니다.


주택 자산가액 분위별 현황 <출처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주택소유통계>

주택 자산가액 분위별 현황 <출처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주택소유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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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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