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빅타이거그룹 대표·기타리스트
얼마 전 나와 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는 음악 유튜버를 발견했다. 같은 이름이라는 호기심에 그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AI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본업 이외에 AI 음악 생성 도구를 활용해 음악을 또 하나의 수익구조로 활용하는 듯했다. 같은 닉네임을 사용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은 나와 사뭇 달라 보였다.
AI 덕분에 이제 누구나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쓸 수 있다. 아직 어딘가 어색한 결과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같은 AI 툴을 사용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발전 속도라면 그 어색함마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AI는 실수하지 않는다. 원하는 조건을 잘만 입력하면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반면 사람은 실수한다. 음을 틀리고, 대사를 놓치고, 박자를 놓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그 실수에 마음이 움직인다. 흔들리는 연주와 갈라지는 목소리, 예상하지 못한 웃음 속에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AI가 인간의 실수와 흔들림까지 정교하게 구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AI는 사람의 예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실수나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지, 어떤 무대에서 실패했는지, 무엇에 상처받았고 무엇 때문에 다시 일어섰는지.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은 결국 그의 예술에 남는다. 같은 대사와 같은 음을 표현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저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AI가 그 모습을 재현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삶까지 경험할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의 예술에 더 강하게 공감한다. 작품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살아왔던 삶이나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와 같은 서사를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인 한편, 예술을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술을 만들 수 있는 시대. 나는 그것을 예술의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양한 방법의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기존의 예술에 대한 공감과 관심이 늘어난 셈이라고 본다. 다만 모두가 예술에 가까워질수록 예술가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나는 왜 이것을 만드는가.'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AI의 발전은 예술가의 특별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덜어내고도 무엇이 남는지를 묻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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