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교차가 만든 명품 고추…‘K-매운맛’의 자존심을 지키다
영양고추는 껍질과 속살이 두꺼워 빻았을 때 가루도 많이 나온다. 또 기온차 덕분에 당분도 많이 쌓인다. 영양 청기면의 한 고추밭에서 근로자들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
경북 고추재배 최대 주산지인 영양
27일부터 서울광장서 '핫 페스티벌'
산간지방 당도 높은 고추생산 적합
농약허용물질관리로 안전성도 확보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H.O.T Festival)이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지난 2007년 시작된 이 축제를 통해 매년 영양고추 생산자와 수도권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 신뢰를 쌓아왔다. 영양군에 따르면 지난해 축제에는 15만명이 찾았으며, 현장 판매와 홈쇼핑을 통한 건고추·고춧가루 등의 영양 주요 농산물 매출액 40억원, 예약 주문 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은 고추 및 가공식품과 우수 농특산물 전시 판매, 영양고추 테마동산 포토존·쉼터, 음식디미방·영양생태관광·로컬푸드 홍보관, 영양고추 챌린지, 원놀음 공연, 레크리에이션 등 다채로운 행사로 관람객들을 찾아간다. 영양고추의 맛을 아는 서울시민들은 시청 앞에서 영양고추 만나는 날을 기다려왔다.
올해 핫 페스티벌의 주제는 'K-매운맛의 원조, 영양고추 살아있네!'이다. 17세기에 한반도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추는 한국인들의 식생활에서 불가결한 재료로 자리 잡았다. 기후와 토양이 고추재배에 적합한 영양은 오래전부터 고추의 주산지였으며, 오랜 세월 축적된 고추 재배 기술로 영양고추의 품질은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1995년 설립된 경북도농업기술원 영양고추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고추 전문연구기관으로 우량품종 육성, 생산기술 개발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999년 한국관광공사의 1명품 1명소 선정사업에서도 영양고추가 명품으로 지정받았다. 2025년 경북의 고추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전국의 약 29%로, 2위 전남을 2배로 앞서는 전국 1위인데, 영양군은 경북 전체 재배 면적의 18%를 차지하는 최대 주산지이다.
그러므로 'K-매운맛의 원조, 영양고추'까지는 누구나 의문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살아있네!'에서는 잠깐 멈칫하게 된다. "영양고추가 죽어가고 있었던가?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인가? 대표선수인 영양고추가 그러하다면 국내산 고추 전체가 그런 운명에 처해 있다는 건가?" 그러고 나서 다시 이번 축제의 주제를 읽어보면, 국내산 고추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영양고추의 의지가 느껴진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고추 생산량 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추 재배 면적은 2만5천743㏊로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2005년 6만1천299㏊에서 20년 만에 58%가 줄어든 것이다. 다만 경북은 고추 재배 면적이 전년 대비 1.0% 늘어났다. 생산량과 가격 등락 폭이 큰 채소의 수급 안정을 위해 대규모 저온저장시설과 장비를 구축하는 '채소류 출하조절시설 지원사업' 공모에 지난 4월 영양고추가 선정된 것, 그리고 최근 영양군의회가 '고추재배농가 생존권 보장 및 선제적 가격안정 대책 마련 촉구 건의문'을 채택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경화 경상북도 농업명장(고추)이 영양 청기면 본인의 농장에서 영양 고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을 앞두고 경상북도 농업명장(고추) 정경화 평화농장 대표를 만났다. 그는 1970년대 후반에 고추 100근을 팔아서 서울로 올라가 대기업에서 엔지니어의 길을 걷다가,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고추농사를 시작했다. 올해 47년째다. 2013년에는 평화농장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정한 스타팜 농장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정경화·이옥자 부부가 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새농민상(像) 본상'을 받았다. 그는 몇 차례의 고추 파동, 우루과이 라운드, FTA 등을 직접 겪으며 영양고추를 키워온 사람이다.
정경화 명장은 영양고추의 우수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양이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서 해 뜨는 시간이 짧고 밤이 길어요. 봄이 되면 수증기가 증발하는데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면 서리가 내리고, 일찍 심은 고추는 냉해를 입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 때문에 고추 껍질과 속살이 두껍습니다. 날이 추우면 씨앗이 얼지 않도록 고추가 자꾸 살을 찌웁니다. 기온이 안 떨어지는 남쪽지방 고추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얇고, 북쪽 산간 지방 고추는 추운 만큼 두꺼워집니다. 고추가 두꺼우니까 빻았을 때 가루도 많이 나오지요."
당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당이 또 집적이 됩니다. 당분이 쌓이는 건 주야간 온도 차에서 옵니다. 남쪽지방에서 일찍 하우스 재배한 참외가 여름 노지 재배한 것보다 더 단 것도, 북쪽 지방 사과가 더 단 것도 같은 원리지요. 낮에 광합성 해놨던 게 밤에 당으로 변화하는데, 여기는 산간 지방이라서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니까 12시간 넘게 밤이 되니까 당분이 많이 쌓이게 됩니다."
기후와 토양이 고추재배에 알맞은 영양은 오래전부터 고추의 주산지였다. 영양에는 국내 유일의 고추 전문연구기관인 경북도농업기술원 영양고추연구소가 있다.
정경화 명장은 영양고추의 우수성을 차근차근 설명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영양은 고추가 생명줄이죠. 절반 이상이 고추로 먹고 삽니다. 이제 솔직히 말해서 저뿐만 아니고 영양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고추명장입니다. 영양 살면서 한 20년 정도 농사지은 사람들은 다 명장이고 고추 생산 달인이지요."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 있게 답했다. "저는 2천 년대 초반에 저농약부터 무농약까지 친환경농업을 15년 정도 했습니다. 화학 농약 치면 보름에 한 번이면 되는데, 친환경 하면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쳐야 돼요. 이제 나이 들어서 힘도 들어서 그만뒀어요.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ositive List System, PLS) 등 관리가 철저히 되고 있어서 영양고추는 모두 안전합니다. 옛날같이 독한 약을 칠 수도 없고, 유통공사 납품할 때도 샘플링 해서 다 농약 자료를 분석합니다."
맛을 위해 여러 노력이 깃든다. 정경화 명장은 세척부터 건조까지의 과정을 짧게 설명했다. "영양에서는 이제 세척하는 건 기본이고 건조 기술은 거의 표준화가 됐어요. 과거에 빨리 말리고 기름을 적게 들이려고 75℃ 정도로 한 3시간씩 삶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꼭지 부분이 새카맣게 됩니다. 또 연구자들은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이 건조 온도가 65℃가 넘어가면 소실이 된다고 해요. 지금은 60℃ 정도로 건조를 시작해서 55℃ 마감을 해 양분 손실을 줄이면서 위생적으로 건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적의 환경과 최상의 기술이 만나서 빚어낸 명품 영양고추가 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일까. 2017년 고추파동 이후 수입량 증가도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그해 가뭄과 늦장마, 탄저병 확산 등으로 고추 생산량이 35% 급감하자 가격이 50% 폭등했고, 가공식품업, 외식업 등에서 중국산 고추·고춧가루 사용량을 늘려 수입량이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 그 후 1, 2년은 고추 가격이 600g에 1만5천원 정도를 유지했으나, 이후 7~8년 동안은 1만2천~1만3천원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농산물품질관리원하고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 1년에 소비하는 양이 고춧가루, 양념 다 포함해 20만~22만t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내 생산은 지금 6만8천t으로 떨어졌어요. 한 30%밖에 안 되죠. 나머지 70%는 거의 중국산이 여러 형태로 들어와 차지하는 겁니다. 우리 통고추를 사와서 손수 닦아 가루를 빻아서 자식들에게 먹인 사람들이 이제 70대, 80대 할머니들이에요. 그분들이 점점 줄어드니까 시세를 끌어올릴 수가 없어요."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H.O.T Festival)이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2007년 시작된 이 축제를 통해 매년 영양고추 생산자와 수도권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 신뢰를 쌓아왔다. 사진은 2025 핫페스티벌. 영양군 제공
영양의 젊은 농부들 중에는 가지를 V자로 유인한다든지, 멀칭 안에 열선을 깐다든지 하는 기술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고추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그와 직거래를 하는 소비자들도 예전에 30근씩 주문하다 요즘에는 20근, 10근씩으로 줄었다고 했다. 비용은 늘어나고 가격은 계속 낮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수박, 팥, 토마토, 오이 등 틈새작물, 복합영농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정경화 명장은 조언했다.
고추 명장의 말은 비논리적인 희망 따위는 일절 배제하고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보고 내린 진단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단호한 말 아래에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영양고추에 대한 애정이 흐르고 있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양고추를 비롯해 국내산 고추의 기반은 지금은 가정에서의 소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도 'K-매운맛'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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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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