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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마지막의 시작

2026-08-26 06:00
신보라 소설가

신보라 소설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어떤 첫 문장은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단숨에 끌어당기고, 어떤 첫 문장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두 예고한다. 그래서 작가는 첫 문장을 오래 고민한다. 이야기를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 누구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려줄 것인지. 첫 문장은 이야기의 문을 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은 과연 문을 닫는 일일까.


책을 읽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남아 있는 종이의 두께를 번갈아 가늠한다. 이제 정말 끝나려나. 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렇게 몇 장을 더 넘기면 마침내 더 이상 다음 문장이 없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비로소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좋은 소설을 읽고 난 뒤 곧바로 다른 일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방금 읽었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펼쳐본다. 이미 읽은 문장을 한 번 더 읽는다고 해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끝나야 한다. 현실의 삶처럼 인물을 끝없이 기록할 수는 없다. 작가는 수많은 시간 가운데 한 지점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멈춰야만 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문장은 단순히 마지막에 놓인 문장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곳에서 정말 끝나는 것일까.


우리는 결말 이후를 상상한다. 살아남은 사람의 다음 날을 생각하고, 사라진 사람의 행보를 궁금해한다.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란 이야기를 닫는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놓아주는 문장에 가깝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작가의 것이었지만, 마침표를 찍는 순간부터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작가만의 것이 아니게 되니까.


결국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는 것도, 한 사람의 모든 상처를 멀끔히 치유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불현듯 오래전에 읽었던 한 문장과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여전히 자신 안에서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정도일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마지막 문장이 있다. 이 글에도 곧 마지막 문장이 올 것이다. 내가 느낀 좋은 마지막 문장이란 이제부터는 당신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가도 좋다고 말하는 문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건네받은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 이후에도 당신에게서 조금 더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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