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물자 권역별로 분산…재난땐 본부 지시 없이도 즉각 집행
대만 최대 민간 구호조직 츠지
권역·현장거점서 재난 先대응
중앙 본부는 지휘 대신 조율만
'정부 위탁-민간 집행' 벗어나
분산식 다중심 거버넌스 구축
대구경북이 나아갈 모범 사례
츠지(慈濟)재단은 60년동안 중앙의 지원이나 지시 없는 '분산식 회복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화롄현의 츠지재단 본부의 교육장에서 재단 관계자가 츠지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 중 하나는 지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생적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 있다. 대만 최대 민간 구호조직 츠지(慈濟)재단이 60년에 걸쳐 구축한 '분산식 회복력 네트워크'는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다중심(폴리센트릭) 거버넌스의 모범사례다. 물자와 권한을 중앙 본부에 집중하지 않고 4개 권역과 250여 개 현장 거점으로 분산해 지역이 먼저 움직이고 본부는 조율만 맡는 구조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가 될 때 대구 중심으로 권력이 쏠리는 것이 아니라, 각 시·군이 저마다의 권한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곳곳에 분포된 물자…결정은 현장에서
대만 츠지재단은 중앙 조직의 지시나 자원의 집중 없이 각 지역이 스스로 재난에 대응하는 '분산식 회복력 네트워크'를 60년에 걸쳐 구축했다. 물자와 권한을 본부에 모으는 대신 지역이 먼저 움직이고 본부는 조율만 맡는 이 구조는 지역이 중앙정부나 외부의 지원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각 지역이 저마다의 중심이 되는 '다중심(폴리센트릭)' 거버넌스의 기반 조건에 부합하는 사례다.
츠지재단은 1966년 화롄현에서 창립된 이래 자원을 본부에 집중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 왔다. 장쭝이(張宗義) 츠지재단 부집행장은 "진정으로 효과적인 방재·구호는 강력한 중앙기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이 즉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며 이를 지역이 대응하고 전국이 협력하는 모델이라고 규정했다. 화롄 본부의 역할은 지휘가 아니라 제도 설계, 자원 통합, 권역 간 조율이라는 설명이다.
츠지재단 관계자가 본부 교육장에서 접이식 침대, 신속 설치 텐트 등 구호물자의 사용법과 보유 현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츠지재단 대응력의 핵심은 본부에 권한과 자원을 모으지 않는 '분산'에 있다. 츠지재단은 전국 22개 비축창고에 총 1만3천273개의 구호물자를 나눠 보관하고 있다. 본부가 위치한 동부(4개 비축창고 2천986개 구호물자)뿐만 아니라 중부(8곳, 3천891개), 북부(6곳, 3천715개) 등 4개 권역에 물자를 균형 있게 배치했다. 접이식 침대, 간이 칸막이, 담요, 신속 설치 텐트 등 필수물품을 현장 가까운 곳에 구비해 재해가 발생하면 가까운 창고에서 즉시 꺼내 쓰는 구조다.
전국 17곳의 '합심구 재해응변센터'와 257곳의 '커뮤니티 거점'도 촘촘히 가동 중이다. 평소 지역사회 복지공간으로 쓰이던 장소들은 재난이 발생하는 순간 즉시 임시 구호 거점으로 전환된다. 재난이 터지면 본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지역 봉사자가 먼저 현장에 진입해 정보 수집, 이재민 파악, 인력 가동 등을 주도한다. 본부는 △판단·기상·정보의 공유 △전국적 수요 파악 △권역 간 인력·물자 조율 등 통합 관리 기능에 집중하며, 본부 재난상황실은 재해가 커질 때만 가동해 권역 간 조달을 조정한다.
대응 프로세스는 재난 규모에 따라 단계별로 구분된다. 화재 같은 사고는 지역 조직이 자체 권한으로 즉시 처리하고, 태풍이나 호우처럼 예측 가능한 재해는 본부와 각 지역 협조센터가 매일 두 차례 회의 자료를 공유하며 대비한다. 돌발 대형 재해처럼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때만 본부 재난상황실을 가동해 전국 권역을 통합 관리한다.
츠지재단 본부가 위치한 대만 화롄현은 지진·해일 등 잦은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는 지역이다. 츠지재단 교육장에 마련된 응급처치법과 대만의 지질특성에 대한 교육자료.
◆책임은 분명히…행동은 과감히
츠지재단과 정부의 관계는 '보위불월위(補位不越位·빈자리를 채우되 넘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츠지재단은 정부-민간 관계를 '정부 위탁-민간 집행'의 일방 관계가 아니라 공동 거버넌스로 규정했다. 정부는 법에 따라 △정책 수립 △재해 지휘 △공공자원 배분을 맡고, 츠지재단은 △커뮤니티 침투력 △신속 동원 △장기 동반이라는 민간의 강점을 발휘한다. 협력 상대는 중앙의 소방청·위생복리부(우리의 보건복지부)부터 지자체와 그 아래의 촌·리(읍·면·동) 체계까지 걸쳐 있다.
물자와 시스템 구축을 넘어 지역 자생을 완결짓는 마지막 열쇠는 결국 '사람'이다. 츠지재단은 2020년 7월 대만 내정부(우리의 행정안전부) 소방서로부터 '민간 방재사(防災士) 배훈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재난 초기 정부의 구조 손길이 닿기 전 자신과 이웃을 살릴 '첫 대응자(First Responder)'를 직접 양성하고 있다.
방재사 훈련기관을 지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9년 9월21일 새벽 발생한 9·21 대지진(규모 7.3)이었다. 군청색 상의에 흰 바지 차림의 츠지 자원봉사자들이 집과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을 도우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9·21을 계기로 2000년 재해방구법이 제정되고, 2016~2017년 무렵 민관 협력이 제도화하면서 츠지재단 민간단체로서 정부와 한 테이블에 앉아 권한·물자 배분을 논의하게 됐고 화롄현 정부 회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행정통합 방향은 대만 민간단체인 츠지재단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사안이 있을 때 중앙의 결정이 하향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즉각 처리하는 등 현장에 필요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역이 맞닥뜨린 문제를 지역의 관점과 능력으로 해결함으로써 더 큰 권리와 책임을 가질 수 있다.
글·사진=대만 화롄현에서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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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쭝이 츠지재단 부집행장이 화롄현에 위치한 재단 본부 교육강의실에서 재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려움 처한 취약계층 즉시 돕고
자립·자생 능력 키워주는 역할"
장쭝이 츠지재단 부집행장 인터뷰
대만 정부와 츠지재단의 협력은 실무 절차까지 정밀하게 제도화한 상태다. 중앙정부가 해상태풍경보 발령과 함께 재난본부를 가동하면, 츠지재단은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화상회의로 중앙재난응변센터와 실시간 상황을 공유한다. 특히 여러 민간단체가 한 번에 몰려 발생하는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단체별 역할을 일목요연하게 조정·배정하면, 츠지재단은 이에 맞춰 구호 활동을 펼치며 정교한 합을 맞춰 나간다.
장쭝이 츠지재단 부집행장은 "정부보다 현장에 먼저 갈 수 있어도 정부의 지시나 협조가 없다면 앞서 나가지 않는다"며 "정부가 하는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부족한 곳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장 부집행장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도화'와 '디지털 전환'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에는 창고 대시보드 같은 디지털 도구를 도입해 권역별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각 지역 조직별 '재해응변 공식연습'과 대리인 제도, 표준작업절차(SOP)를 정립해 현장 경험이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남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조직과 물량을 운용하며 생길 수 있는 재정에 대한 오해에도 명확한 선을 그었다. 장 부집행장은 "자선사업은 전액 기부금으로 충당된다"며 "대만 위생복리부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모금·집행하고 있으며, 매년 재무보고서를 인터넷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정치권과의 관계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묻자 장 부집행장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이 바뀌면 그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되, 정부 방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며 "우리의 초심은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을 즉시 돕고, 도움을 받은 이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다"고 했다.
글·사진=대만 화롄현에서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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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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