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화롄현 청년발전센터는 2019년 설립된 청년 업무 전담기관으로, 12개의 입주공간을 비롯해 사무실·공용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박준상 기자
대만 동부 화롄현(花蓮縣)은 험준한 산지가 대부분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교통 여건이 열악하고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했던 곳이다. 농업·관광업 중심의 단순한 산업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고향을 떠나고, 외지 대학으로 진학한 인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화롄현은 중앙정부나 대기업의 수혈에 의존하는 대신 지역 내부에서 청년이 스스로 자립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반전을 이뤄내고 있다. 이는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대구·경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을 넘어 가장 근본적인 물음, 즉 청년이 살기 좋은 경제·산업적 지향점은 무엇이냐와 관련돼 있어서다. 대구·경북의 각 지역이 자기 완결적 청년·창업 생태계를 갖추는 '다중심(폴리센트릭)' 구조 확립이 필요하다.
화롄현 청년발전센터 입구. 안쪽에는 사무실, 공용회의실과 12개의 입주공간이 있다. 박준상 기자
◆15세부터 45세까지 이어지는 정착 설계
대구·경북 통합 논의에서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청년인구 유출 방지다. 화롄현은 지역 내에서 청년이 스스로 서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청년지원 정책은 단순한 지원금 지급이 아닌 '지역과의 연결'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인 청년발전센터다. 2019년 설립됐으며, 15세부터 45세까지 청년의 전 주기를 추적 관리하는 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의 법적 청년 연령은 18세 이상 45세 이하로, 화롄현의 해당 인구는 11만7천172명이다.
화롄현의 연간 청년 예산은 초기 4천300만 대만달러에서 현재 1억 대만달러(약 45억원)로 늘었다. 타이베이나 가오슝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면 여전히 적은 규모이지만, 증액에는 조건이 붙는다. 성과지표(KPI)를 달성해야 하고, 해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에 맞춰 새 예산이 편성·집행되는 구조다.
지원 체계의 특징은 개입 시점은 이르고 손을 놓는 시점은 늦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시작 연령이 법적 청년 연령보다 어린 15세다. 2021년 시작한 '청년 몽상가' 사업은 지역 출신 중고생과 대학생이 여름방학 두 달 동안 지역 공동체 주민과 함께 현장을 돌며 지역사회를 조사하도록 하는, 일종의 대회(시합) 같은 것이다. 자기가 사는 동네를 이해해야 정착할 마음도 생긴다는 정책적 판단이 작용했고, 이와 함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게임의 룰을 도입한 것이다. 2021년 1회 대회 땐 17개 팀 참여에 총상금이 14만 대만달러였으나, 올해 5회 대회 땐 40개 팀 70만 대만달러로 성장했다.
화롄현 청년발전센터에 입주한 창업팀의 사무공간. 입주를 하면 월 1회 멘토링을 받고 월 2회 창업육성 수업을 들어야 한다. 박준상 기자
대학생 단계에서는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콘텐츠를 주제로 졸업 전시나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장학금 성격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청년-지방산업 연계 보조사업'을 2023년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33개 팀이 제안해 20개 팀이 선정됐다.
졸업 이후에는 'HSH 창신창업경진대회'가 맡는다. 화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라면 대만 전역의 졸업생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놨다. 핵심은 상금이 아니라 정착 조건이다. 1위 MVP에게는 상금 15만 대만달러와 별도로, 화롄에 정착할 경우 월 3만 대만달러(한화 약 131만원) 수준의 창업기금을 지급한다. 올해는 연 80만 대만달러 규모로 설계하고, 현지에 남는다는 양해각서(MOU) 체결이 전제된다. 제안한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면 지원이 추가된다. 돈이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남겠다는 약속이 돈을 부르는 식이다.
◆입주와 동시에 시작되는 '의무'
화롄현은 단일 점포나 사업체를 내는 수준을 넘어 청년 창업을 지역산업의 구조 전환과 연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축한 것이 '신창(新創) 대연맹'이다. 공간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에 접속시키는 방식이다. 츠지대학, 석재·자원산업 연구발전센터, 공예기술연구원 등 산·학·연·관이 함께 참여해 지역산업의 병목을 점검하고 전환 전략을 짠다.
12개의 입주 공간을 두고 있지만, 2024년부터 온라인 입주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연간 최대 22개 팀을 참여시킬 수 있다. 2022년 12개 팀에 대해 80회 멘토링을 했고, 올해는 21개 팀에 193회 멘토링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목할 대목은 입주팀에 주어지는 '의무'다. 월 1회 이상 멘토링을 받아야 하고, 매달 두 차례 창업육성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사업자 등록부터 소비자 마케팅, 시장조사까지 실무 역량을 채우는 과정이다. 월말에는 화롄현과 인근 도시의 동종 업계 대표를 초청해 산업 교류 워크숍을 개최한다. 의견 교환이 그대로 비즈니스 매칭과 피칭 기회가 되도록 했다. 또 연 1회 입주팀 전체가 함께 다른 도시를 견학한다.
화롄현의 사례는 통합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 준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거대 단일 행정구역을 만드는 것에 그친다면 지역 불균형과 청년유출을 막기 어렵다. 마냥 중앙정부와 대기업의 시혜성 지원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대구경북의 청년·창업 생태계가 주도하는 경제활동이 밑바탕이 될 때 행정통합도 더욱 단단한 결실을 볼 수 있다.
황샤오잉 화롄현 청년발전센터장은 센터의 특징을 "청년과 다른 영역을 잇는 가교"라고 설명했다. 박준상 기자
◆청년 지원금엔 검증·관리·추적 필수
황샤오잉(黃筱螢) 화롄현 청년발전센터장은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배운 것을 무엇에 연결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라며 "센터는 청년과 다른 영역을 잇는 가교"라고 설명했다. 다루는 영역이 농업부터 원주민 산업까지 넓기 때문에 어떤 팀이 식품을 만들면 그것을 화롄현 식품 담당 부서로 데려가 연결하는 일까지가 센터의 몫이라고 했다. 황 센터장은 "창업을 단순히 사업체 하나, 점포 하나를 여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창업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센터에서는 외부 자원도 충분히 활용한다고 했다. 황 센터장은 외부 자원을 '지렛대'에 빗댔다. 그는 "청년들이 외부의 보조금이나 지원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며, 말 그대로 도움으로 인식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는 중앙정부 단위 사업·경진대회 보조로 3천800만 대만달러 이상을 확보했지만, 이 돈에도 검증과 추적이 따라붙는다"고 책임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일부 청년과 창업업체가 지원금만 받고 다른 지원사업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기자의 말에 황 센터장은 "그런 이탈은 돈만 주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우리는 돈만 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검증하고, 관리하고, 후속 추적을 계속한다"고 답했다. 투자 연결도 설계돼 있다. 황 센터장은 "센터에서는 창업팀을 산업별로 분류하고 국제 혹은 다른 도시의 투자가 필요한지도 구분한다"며 "이후 투자자를 직접 데려오거나 미팅을 잡아준다. 멘토 강사진에 투자사 관계자를 일정 비율 포함시키는 것도 네트워킹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글·사진=대만 화롄현에서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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