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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 동네 문화유산] 1천200년 돌탑 아래, 오늘의 소원이 쌓인다구미유일 국보

2026-09-04 18:04

구미 유일 국보 ‘죽장리 오층석탑’…전탑형 오층탑 가운데 국내 최고 높이
통일신라 석공의 손길부터 남매 전설·소원 기와까지

죽장리 오층석탑, 뒤로 근래에 조성된 죽장사 대웅전이 보인다. 박용기 기자

죽장리 오층석탑, 뒤로 근래에 조성된 죽장사 대웅전이 보인다. 박용기 기자

"가족 모두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가 되게 해주세요."


검은 기와 한 장에 소원이 빼곡히 적혀 있다. 주변에는 건강과 합격, 가족의 평안을 바라는 소원 기와가 가득하다. 기와에 적힌 주소를 따라가면 서울과 부산, 대구, 경기 등 전국 각지에 닿는다. 그 사이 다섯 층 돌탑이 하늘을 받치듯 서 있다. 1천200여 년 전 세운 탑과 2026년을 사는 사람들의 소원이 한 뜰 안에서 만나는 곳,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이다.


구미시 선산읍내를 벗어나 무을·상주 방향으로 약 2㎞ 가면 옛 죽장사터에 닿는다. 입구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푸른 잔디와 숲을 배경으로 거대한 돌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는 약 10.7m. 구미에 하나뿐인 국보다.


죽장리 오층석탑. 발굴조사 결과와 탑의 양식을 토대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박용기 기자

죽장리 오층석탑. 발굴조사 결과와 탑의 양식을 토대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박용기 기자

탑 아래에 서면 자연스레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던 규모가 그제야 실감 난다. 발굴조사 결과와 탑의 양식을 토대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서기 750년 전후로 보면 2026년을 기준으로 1천27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전탑형 오층탑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1968년 12월 19일 국보로 지정됐다.


탑의 기본 골격은 2단의 기단과 5층의 탑신, 그 위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로 이뤄졌다. 지금은 상륜부의 받침돌인 노반만 남고 그 위 장식은 모두 사라졌다.


탑은 하나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것이 아니다. 바닥에는 길고 큰 돌 17매를 놓아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장의 판석을 조립해 2단의 기단을 세웠다. 상층 기단 위의 1층 탑신받침은 5매, 1층 몸돌은 7매의 석재로 짜였다. 맨 아래 지대석부터 정상의 노반까지 탑을 구성한 석재는 모두 171매에 이른다.


모든 석재가 통일신라 때부터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다. 탑은 1972년 해체·복원됐으며, 이 과정에서 상층 기단의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 일부 면석과 덮개돌을 새 석재로 복원했다. 처음 탑을 세운 석공의 손길과 문화유산을 지켜 온 후대의 보존 과정이 함께 남아 있다.


죽장리 오층석탑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붕돌이다.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지붕돌의 위아래 면을 계단처럼 층층이 깎았다.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의 모습을 돌로 옮긴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탑은 '모전석탑', 곧 전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분류된다.


탑을 한 바퀴 돌다 보면 1층 몸돌 남쪽 면에 낸 감실이 눈에 들어온다. 가로 66㎝, 세로 107㎝ 크기로, 현재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작은 금빛 불상이 모셔져 있다. 최근에 봉안한 불상으로 보이지만 본래 불상을 모셨던 자리에 다시 불상이 들어서면서 탑의 신앙 기능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탑이 선 곳에는 한때 상당한 규모의 죽장사가 있었다. 주변에서 확인된 주춧돌과 기와 조각은 탑이 홀로 서 있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1972년과 2016년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건물터가 확인됐다. 수많은 돌을 다듬고 운반해 10m가 넘는 탑을 세운 거대한 불사는 당시 죽장사의 위상과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1층 몸돌에 낸 감실 안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작은 금빛 불상이 모셔져 있다. 박용기 기자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1층 몸돌에 낸 감실 안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작은 금빛 불상이 모셔져 있다. 박용기 기자

옛 죽장사는 17세기 무렵 폐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54년 법륜사가 들어섰고, 2000년 다시 죽장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죽장리에는 오래전 남매가 서로 재주를 겨루며 탑 쌓기 내기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오빠는 다른 곳에서, 누이는 죽장사에서 탑을 쌓기 시작했고 누이가 먼저 이 웅장한 오층석탑을 완성해 이겼다는 이야기다. 옛사람들이 이 거대한 탑을 얼마나 경이롭게 바라봤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다시 탑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면 첫눈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시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 석공의 손길과 옛사람들의 신앙, 탑을 지켜 온 복원의 역사, 남매의 전설과 2026년의 소원 기와가 한자리에 포개진다. 약 10.7m의 돌탑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까닭은 그 아래 1천200여 년의 시간이 함께 서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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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

경북부에서 구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묻고, 진실하게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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