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취약계층 돕는 공유냉장고, 모두 11곳 운영
개인 기부 감소에 기업·단체 후원 의존도 높아져
“기부 다변화로 지속 가능한 운영망 필요”
지난달 27일 대구 서구 애은성당 에버그린 카페에서 어르신들이 공유냉장고에 마련된 채소를 고르고 있다. 홍예원 수습기자
지난달 27일 낮 12시쯤 대구 서구 평리동 애은성당 에버그린 카페. 카페 한쪽 공유냉장고 안에는 오이와 호박, 콩나물 등 각종 채소와 빵이 가득 찼다. 어르신 10여명은 냉장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한 사람당 하나씩만 챙겨가세요." 성당 직원의 안내가 시작되자 어르신들 손길이 분주해졌다. 이들은 필요한 먹거리를 하나씩 가방에 담았다. 냉장고는 금세 텅텅 비었다. 애은성당엔 매주 평균 65명이 공유냉장고를 찾는다. 후원품이 들어오는 목요일이면 준비한 물품이 빠르게 동난다.
이날 취재진이 직접 본 공유냉장고는 홀몸어르신 등 취약계층의 한 끼 식사를 돕는 나눔 공간 기능을 하고 있었다. 민간 주도로 일반인들이 식재료와 먹거리를 채워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자유롭게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냉장고가 나눔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유냉장고는 2018년 서구 비산2·3동 민간에서 운영한 '나비냉장고'가 시초였다. 3일 대구 9개 구·군에서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운영 중인 공유냉장고는 모두 11곳이다.
가톨릭 신자인 이순영(여·83)씨는 "목요일이면 여기서 야채를 받을 수 있어 매주 온다"며 "혼자 살면 끼니를 챙기기 쉽지 않은데 식재료를 가져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상이(여·86)씨는 "신자가 아닌데도 먹거리를 받을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며 "음식도 챙기고 이웃과 얘기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대구 서구 애은성당 에버그린 카페에 설치된 공유냉장고가 팔달신시장 상인과 기업 등이 후원한 채소와 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홍예원 수습기자
같은 날 찾은 중구 동인동 행정복지센터의 공유냉장고(동인 행복 공유냉장고)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취재 당시 냉장고는 이미 비어 있었다.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홀몸 어르신과 중장년 1인 가구 등 음식이 필요한 주민에게 직접 전달해 냉장고를 상시 채워두진 않는다고 한다. 이곳엔 올해 1~8월 40여차례에 걸쳐 총 8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이 들어왔다. 한 달 평균 80명이 공유냉장고를 통해 도움을 받는다. 동인동행정복지센터 김은경 복지팀장은 "공유냉장고는 개인 먹거리보다 시장 또는 기업에서 보내오는 후원물품이 많다"며 "지역 봉사단체를 모아 후원회를 꾸려 필요한 가구에 우선적으로 전달한다"고 했다.
이처럼 일선 현장에선 공유 냉장고에 대한 호응이 좋지만 나눔의 온기를 이어가려면 지속적인 지원과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율적인 개인 후원이 크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관·단체 후원만으론 공유냉장고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후원 주체를 다변화해 안정적 먹거리 공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대구 한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예전엔 주민들이 직접 만든 반찬을 수시로 가져다 놓곤 했다. 지금은 개인 기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시장이나 기업에서 보내오는 후원품이 대부분"이라며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자칫 나눔 문화가 끊길 수 있을까 많이 우려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유냉장고가 지속가능한 나눔 문화 안착의 지렛대가 되려면, 단순 식품 배분 사업을 넘어 주민 누구나 기부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 '공유자산'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여긴다. 수성대 류태경 교수(사회복지자율학부)는 "지역 소상공인과 협약해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망을 만들고 지역화폐나 착한가게 인증 등 기부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기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대구 서구와 북구를 맡고있습니다.
홍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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