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공사중단을 끝내고 지난달 공사를 재개한 수성구 황금동 소규모재건축사업 현장. 현재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윤정혜 기자
'현상'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금리가 움직이고 돈의 흐름이 방향을 틀면 소비자들의 행동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에는 어김없이 사전에 시그널이 있어왔다. 시장에 흩어진 파편화된 신호들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 그것으로도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힘과 새로운 기회를 움켜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경제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신호인 숫자. 시장이 던지는 경고와 기회의 시그널을 읽어본다.
대구 주택현장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공급절벽 구간에 진입하면서 주택 공사현장의 닫혔던 문이 속속 열리고 있다. 과공급 여파로 1만 가구를 웃돌던 미분양 사태로 '시계 제로'에 빠졌던 대구 주택시장은 예고된 공급 급감기에 선제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다. 대구시도 그동안 주택시장을 짓누르던 과공급이 해소되고 미분양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왔다고 판단하고, 공급절벽에 선제 대응하는 주택정책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1월 내려졌던 '주택사업 승인 전면 보류' 조치도 3년여 만에 해제될 전망으로,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해제되는 주택사업 셧다운
PF(프로젝트 파이낸싱)나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으로 중단된 공사가 재개된 대구의 주택사업지는 올해 수성구 2곳, 달서구 1곳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예고된 지역 공급 물량이 '절벽' 수준으로까지 줄어, 지금 사업을 재개해도 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향후 2년 간 예상가능 한 대구 공급물량은 6천호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114 집계를 토대로 확인한 대구 입주예정물량은 5천377호에 불과하다. 대구에서 연간 적정한 신규 물량은 1만2천~1만3천호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적정 물량의 1/4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공급 가뭄 현상은 타 광역시와 비교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대구와 달리 부산과 대전은 향후 2년간 예상되는 공급물량이 2만호를 훌쩍 넘겼고, 광주와 울산도 각각 1만4천여호에 달한다.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공급부족 현상은 예견되는 수순으로,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예견되면서 대구 주택 사업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범어공원 풀비체 소규모재건축 사업의 경우 지난달부터 공사를 재개했다. 공정률 87%의 건물 외형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 부동산 PF 연장 등 문제가 복합 작용해 2024년 공사가 중단된 지 2년 만이다. 8월부터 공사를 시작하면서 현재는 내부 인테리어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중으로, 내년 1월 준공이 목표다.
범어공원풀비체 소규모재건축정비사업 이정란 조합장은 "그동안 대구에 미분양 문제가 컸고, 주택경기도 얼어붙으면서 PF연장 등 금융 문제와 조합원 분담금 증액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대구 공급물량이 부족하고 특히 수성구에 신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조합원과 시공사 모두 한발씩 양보해 (공사비) 합의에 이르며 사업을 재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호반건설이 시공을 맡은 황금동의 '호반써밋 골든스카이' 사업지도 올해 상반기 공사를 재개했다. 대구 주택경기가 급하강하던 시기 공매로 넘겨진 사업부지를 시공사인 호반건설이 매입해 시행·시공을 모두 진행하는 중이다. 호반건설 사업지는 2023년 6월 착공한 뒤 2024년 12월 공사를 중단했고, 약 1년 5개월 뒤인 올해 4월 다시 공사장 문을 열게 됐다. 해당 사업장은 지하 5층~지상 43층 총 823세대의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다.
대구 미분양 여파로 중단됐던 달서구 본동의 더샵달서센트엘로 사업장도 공사 중단 1년여만에 올해 상반기 공사를 재개했다. 2022년 8월 착공한 뒤 대구 부동산 경기가 가파르게 가라앉고 미분양과 PF 연장 등 금융 문제로 지난해 1월 공사가 멈춘 현장이다. 이 사업장도 리파이낸싱을 진행하면서 2029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주택 사업장의 이러한 태세 전환은 대구 주택시장이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로 풀이된다. 과공급 물량이 해소되면서 1만 호를 훌쩍 웃돌던 미분양 주택은 4천호 초반까지 줄었다. 여기에 주택시장이 하반기 반등할 조짐을 보이면서, 사업 재개 후 분양에 나서도 좋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염정빈기자
◆풀리는 신규 주택사업 인허가
대구 주택경기 반등이 더디게 나타나고 있지만 대구시의 주택정책은 우수한 입지에 양질의 주택을 단계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시장 정상화'에 맞춰졌다. 예상되는 대구지역 '공급 숫자'가 보내는 신호에 선제 대응한다는 의미다.
정상화가 필요한 시그널은 지난 6월 대구권으로 분류되는 경북 경산에서 공급된 공동주택 청약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아이에스동서의 펜타힐즈W의 전용면적 84㎡의 경우 6억원 중후반대 분양가에도 평균 12대 1의 높은 청약경쟁률을 바탕으로 저층 일부를 제외하고 계약이 모두 이뤄진 점도 향후 신규 공급 수요가 확인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대구시도 숫자가 보내는 신호와 달라진 시장 분위기에 맞춰 민선 9기 주택정책 대변화를 예고했다. 지난달 중순 추경호 대구시장이 주재한 제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도 이같은 기조가 확인됐다. 영남일보가 입수한 이날 회의자료에 따르면 대구시는 주택 공급과잉에 대한 조정이 진행되면서, 하반기 대구 부동산시장은 저점을 통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주택시장 정상화 추진계획' 수립하고, 노후계획도시・재건축・재개발(중장기), 민영사업(단기) 단계별 대응 로드맵을 내놓는다는 그림이다. 김병환 대구시 건축주택국장은 "적정한 미분양은 시장에 필요하다. 미분양이 너무 없는 것도 시장의 과열 징후로 읽힌다. 대구의 현 미분양과 소진 과정을 보면 적정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같은 정책 전환 근거는 시장 지표, 즉 숫자다. 대구시의 미분양 추이와 주택거래량, 소비심리 지표에서 개선세가 확연하다. 올해 상반기 대구 주택매매거래량은 전년동기 대비 14.4% 증가해 전국(10.6%)에 비해 더 큰 폭으로 회복했고, 같은기간 대구 부동산 소비심리지수는 평균 101.8p로, 전년동기(95.1p) 대비 6.7p 상승하며 소비심리가 개선되는 양상으로 분석됐다. 미분양 주택 역시 7월말 긱준 4천78호로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이상 감소하며 공급과잉 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판단이다.
이 자리에서 대한주택건설협회 대구시회도 대구의 분양 및 입주물량 감소로 인한 공급부족을 우려하며 선제적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향후 신속한 인허가 등의 지원을 요구했다.
윤정혜
경제 현장의 이야기를 쉽게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