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 HRD교육원 부원장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타인의 실수와 고통을 자극적인 상품으로 소비하며 연명하는 '타인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회'로 전락했다. 자신의 작은 이득에 집착하고 상대적 손해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린다. 성취가 불확실해지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타인의 불행으로 위안받으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컴퓨터 화면을 열면 안타까운 사고 피해자나 유가족을 위로하기는커녕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들을 덧씌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악플세례가 수도 없이 쏟아진다. 연예인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에서 실수하거나 비판받을 만한 언행을 했을 때, SNS 계정에 찾아가 수만 개의 악플로 도배한다. 일면식도 없는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다. 젠더·세대 간 갈등도 공감이나 대책을 찾기보다는 일단 '갈라치기'로 벽을 친다. 무차별적 비난에는 나는 도덕적으로 무결하다는 착각과 집단 뒤에 숨은 익명성이 결합해 있다.
병든 사회의 정점은 정치다. 한국 정치는 상대 정당의 과오나 실수를 먹고 사는 '정치 업자'에 불과하다. 발언의 앞뒤 맥락과 취지를 완전히 소거한 뒤, 특정 단어만을 잘라내어 '사이코패스적 발언'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법적·개인적 비극도 정치도구일 뿐이다. 팬덤 정치를 동원한 대규모 '좌표 찍기'와 악플 폭탄은 정당이나 정파의 방조 아래 오히려 부추겨진다. 국가적 참사마저도 상대의 도덕적 결함으로 몰아가며 '악마화'에 악용된다. 비전과 성과를 내기보다 상대의 실수를 부각시키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표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을 자산으로 삼고, 혐오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현상은 최근 들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사회변혁,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그늘에는 저급한 문화들이 자리하게 됐다. 사회 리더들이 꼼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당한 수단과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졌다. 구성원들은 공정한 게임을 믿지 않게 됐다. '눈앞의 만만한 타인(실수한 개인)'을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방향성을 상실한 분노'가 일상화됐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무사유'가 거대한 악을 만든다고 경고했으나, 오늘날의 무사유는 개인의 개별적 성찰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에게 "손가락을 멈추고 3초만 생각하자"는 윤리적 자성만을 요구하기에 앞서 혐오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직접 겨누는 구체적 대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타인의 불행을 재화로 바꾸는 구조를 법 제도로 차단해야 한다. 허위 사실이나 악의적 명예훼손으로 불법적 이익을 취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여 손해액의 수 배에 달하는 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혐오 표현과 인격 모독성 콘텐츠에 대해 수익 창출을 금지하고 계정을 즉각 정지시키는 자율규제 의무를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말뿐인 윤리 강령을 넘어, 팬덤을 동원한 좌표 찍기에 가담하거나 방조한 당원에 대해 당권 정지 등 강력한 중징계를 부과하는 내부 규율을 법제화해야 한다. 근거 없는 비난을 펼친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다음 선거 출마 금지와 같은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 무너진 시스템 속에 방치된 분노의 무한궤도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타인의 불행 위에서 얻는 찰나의 환각으로 인해 결국 우리 사회 전체는 도덕적 파산이라는 거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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