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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2026-09-18 06:00

여행과 나날(미야케 쇼 감독·2025·일본)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하나는 주인공인 작가가 쓴 시나리오 속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여행 이야기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하나는 주인공인 작가가 쓴 시나리오 속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여행 이야기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어떤 영화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영상 속 이미지는 일렁이는데,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이런 영화는 직접 봐야만 한다. '여행과 나날'은 영화라는 매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매혹적인 영화다. 미야케 쇼 감독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는 극중극 형식으로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는 주인공인 작가가 쓴 시나리오 속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여행 이야기다. 여름 편과 겨울 편. 작가의 시나리오 속은 여름 바다이고, 자신이 여행을 간 곳은 폭설에 뒤덮인 산속 여관이다. 푸른 바다와 흰 눈의 색채 대비와 조화가 눈부시다.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1967)과 '눈 집의 벤 씨'(1968) 두 편을 각색했다. 각기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풀어낸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이야기의 힘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지나친 영상미나 예술성을 강조하는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대중예술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로 말하자면 별 내용이 없는 이 영화만큼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파도치는 바다와 눈 덮인 여관에서 만난, 낯선 이들의 고독과 계절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름 바다의 소금기와 눈 덮인 겨울의 찬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니 감독의 바람대로 '체험하는 영화'였던 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면'이라는 책이 있다. 저널리스트 조 코헤인은 이 책에서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누면 작은 세계 하나가 열릴 때가 있다"라고 썼다. 영화는 이 말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이미지의 영화, 풍경의 영화인 동시에 '만남의 영화'다. 낯선 이와의 만남, 그리고 미묘한 변화. 영화를 본 사람만 알겠지만, 여름 편의 바다에서 문득 사라진 청년이 건너편까지 헤엄쳐 갔다고 나는 믿는다. 겨울 편의 작가는 낯선 여관에서 처음 겪는 일들을 경험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지며 비틀거리지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만남이 준 변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낯선 이에게 말을 걸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지 모른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는 말이 있다. 길을 잃는다는 건 낯선 곳, 처음 만난 길이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때로는 익숙한 곳에, 때로는 낯선 곳에 머물 뿐이다. 베스트셀러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 카트린 지타는 말했다.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현명한 자는 여행한다"고. 삶의 고비에서 낯선 길이 나타난다면, 방황 대신 여행자의 눈으로 보자. 헤매는 건 똑같겠지만, 방황과 여행의 차이는 결국 가야 할 지점을 안다는 것이다. 그걸 가르쳐주는 건 내면의 나침반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름의 바다도, 겨울의 눈도 결국은 하나다. 형태는 다르지만, 물이라는 하나의 재료다.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르게 보이는 낯선 이도 같은 재료, 같은 종족이다. 같은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들. 이 깨달음이 인간관계를 조금은 더 편하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사족. 미야케 쇼 감독과 심은경 배우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둘 다 자신만의 여행길을 가는 작가, 예술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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