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여가’ 통해 화성(畵聖) 이전의 인간 정선 보여줘
‘금강전도’ ‘풍악내산총람’ 나란히 보면 색채·세밀함 대비
순서대로 통천문암, 풍악내산총람(보물), 금강전도(국보). 권혁준 기자
대구간송미술관 특별전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에는 정선 작품 216점이 출품됐다. 1·2·4·5전시실을 채운 작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를 총괄 기획한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지난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꼭 봐야 할 단 하나의 작품으로 국보 '금강전도'를 꼽았다. 허 총괄은 "여기까지 오셨으니 금강전도는 보고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이나 교과서로 익숙한 작품이지만 실물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다르다. 날카롭게 솟은 암봉과 나무가 우거진 토산이 대비되고, 화면 위쪽의 푸른빛까지 더해져 거대한 구도를 이룬다. 허 총괄은 "실물을 보면 색감과 디테일, 그것들이 딱 어우러져서 나오는 기운이 있다"고 설명했다. 푸른색에 대해서는 "하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금강산이 뿜는 기운, 아우라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 전시된 보물 '풍악내산총람'도 함께 볼 만하다. 가을 금강산을 그린 이 작품에는 붉은 단풍과 녹색이 어우러져 있다. 허 총괄은 "금강전도가 아우라라면 풍악내산총람에서는 다채로움과 세밀함이 확실하게 보인다"며 두 작품을 비교해 볼 것을 권했다.
정선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전시 첫 작품인 '독서여가'를 눈여겨볼 만하다. 책이 놓인 방 앞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정선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배치하면서 화성(畵聖)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의 정선을 보여주려는 기획 의도를 드러냈다.
허 총괄은 "금강전도도 멋있고 훌륭하지만 이걸 그린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인간 정선을 보여주자는 게 이번 전시의 중요한 방점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정선과 노년의 정선을 비교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주요 관람 포인트다. 36세 때 그린 '신묘년풍악도첩'과 72세의 '해악전신첩'을 이어서 보면 36년 사이 달라진 화법을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실제 경관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포착하려는 모습이 강했다면 노년으로 갈수록 붓질은 부드러워지고 화면 구성은 더욱 탄탄해진다.
허 총괄은 "36세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청년의 날카로움 같은 것이 있다"며 "70대가 되면 굉장히 부드러워지고 구성력은 훨씬 탄탄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충실히 옮기려던 단계에서 나아가 명소의 특징을 포착하고, 필요한 요소를 화면 안으로 끌어와 재구성하는 능력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허 총괄은 유명세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통천문암'을 꼽았다. 긴 족자에 동해와 거대한 암벽,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을 수묵으로 담은 작품으로 정선의 원숙한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가까이에서 보면 몇 ㎜ 간격으로 선을 아주 섬세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굵고 가늘고 진하고 연한 변화까지 붓으로 표현해 냈다"며 "정선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화법이 완성되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고 말했다.
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