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짓고 4천804억원 국가사업 쏟아져도…“섬의 현실에 맞는 행정 필요”
바다에서 본 울릉도 전경. 홍준기 기자
울릉공항 공사장에서 불과 400여m 떨어진 곳. 공항에서 일할 직원들의 숙소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땅은 아직 비어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2024년 49억원을 들여 7천64㎡ 규모의 부지를 사들였지만 진입도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건축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공항은 활주로와 터미널을 갖추며 2028년 개항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공항에서 일할 직원들의 집은 첫 삽도 뜨지 못한 것이다.
울릉도에서는 사업 하나를 추진하는 일이 육지와 같지 않다. 땅을 확보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도로가 있어야 하고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산이 확보되어도 사업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다시 다음 절차를 기다려야 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교통·토지·건축·예산 문제와 겹치면서 사업 하나가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히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울릉도에서 '특별자치군' 논의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도 이 같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전국 43개 국토외곽 먼섬에 1조942억원을 투입하는 첫 종합발전계획을 확정했다. 이 가운데 울릉군에는 울릉도와 죽도, 독도를 대상으로 21개 사업, 총 4천804억원이 반영됐다. 국비만 3천351억원이다. 울릉공항을 비롯해 도로와 상·하수도,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재난·대피시설 등 각종 기반시설 사업이 포함됐다.
국가가 울릉도에 투입하는 돈은 분명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사업비가 늘어나는 것과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등가가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 대형사업이 몰리면서 울릉군의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울릉군의회 군정질문에서는 대형 투자사업과 관련한 군비 미부담분 약 38억원을 놓고 집행부와 의원 간 공방이 벌어졌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도 2022년 566억원에서 현재 114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제시됐다.
국가가 사업을 결정하고 예산을 내려보내는 것과 그 사업이 울릉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항이 생기면 도로와 주거, 의료, 관광시설 등 주변 인프라도 따라붙어야 한다. 늘어나는 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비용도 결국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
울릉공항이 들어설 사동리 마을 전경. 홍준기 기자
남한권 울릉군수가 '특별자치군'을 주요 과제로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특별자치군은 일반 군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이지만, 개별 특별법에 따라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가 가진 일부 권한과 특례를 이양받아 운영하는 행정구역이다.
남 군수는 특별자치군 설치를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별자치군의 핵심은 이름이 아니다.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가 쥔 권한 가운데 무엇을 울릉군이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그 권한을 행사할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울릉공항 직원사택 문제만 봐도 그렇다. 공항과 가까운 곳에 직원 100여 명이 생활할 숙소를 짓겠다는 계획은 있었지만 도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한국공항공사가 부지를 매입하기 전 울릉군이 도로 여건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결국 부지 매입 이후 진입도로 문제가 현실화됐다. 대체도로를 확보하려 해도 주변 토지 소유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사업이 울릉도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업을 결정하는 단계부터 섬의 지형과 토지 사정, 주민 생활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지역에서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울릉군의회 역시 특별자치군을 추진한다면 주민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특례가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통과 물류, 의료, 교육, 관광과 환경, 도시계획, 재정 등 육지와 출발선부터 다른 분야를 어떻게 다룰지가 앞으로의 핵심 쟁점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도 거창한 제도의 이름만은 아니다. 배가 뜨지 않아 발이 묶이는 일, 육지보다 비싼 물류비, 병원 이용의 어려움, 부족한 주거공간처럼 하루하루 부딪히는 문제가 먼저다. 특별자치군이 추진된다면 결국 이런 생활의 문제에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울릉도에 어떤 권한을 줄 것인지,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할 것인지,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뒤따라야 한다.
울릉도에는 앞으로 5년간 4천804억원 규모의 국가사업이 예정돼 있다. 공항을 비롯한 대형 인프라가 현실이 될수록 울릉도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먼 섬'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지원을 받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먼 섬'이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지역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질 수 있을까. 울릉도가 꿈꾸는 '특별자치군'의 실체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이다.
한편 학계에서도 울릉도와 같은 섬 지역에는 기존 기초자치단체와 다른 자치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기 제주대 명예교수는 울릉·옹진에는 '재정확대형', 신안에는 '규제완화형' 특별자치제도가 적합하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울릉도의 경우 기존 지방재원을 나눠 갖는 수준을 넘어 재정 총량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특별자치군 설치와 규제특례를 담은 별도의 특별법안을 제안하며 법률에 기반한 새로운 기초자치 모델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반면 하혜영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은 특별자치군 특례가 기존 법률과 중복되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울릉특별자치군의 관건은 명칭에 '특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을 보완할 실질적인 재정과 권한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모아진다.
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