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더 달라는 게 아니다”…울릉에 필요한 건 ‘섬에 맞는 권한’
막바지 활주로 공사가 한창인 울릉공항 건설 현장. 홍준기 기자
울릉도가 '특별자치군'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특별자치군이라는 이름만 붙인다고 주민들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와 경북도가 가진 권한 가운데 무엇을 울릉군이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할지, 그 권한을 행사할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 육지와 똑같이 적용되는 각종 기준 가운데 어디까지 섬의 현실에 맞게 바꿀지가 핵심이다.
울릉군이 구상하는 특례도 크게 보면 '돈과 생활, 결정권'으로 모인다. 현재 울릉군은 지방교부세 특례를 비롯해 생필품 해상운송비 지원, 청년 정주 지원, 섬 공항 면세지역 지정, 원격의료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신안군과도 국토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 개정과 특별자치군 설치를 함께 논의하고 있다.
먼저 필요한 것은 돈이다. 울릉은 인구가 적다고 행정비용까지 적은 섬이 아니다. 도로 하나를 놓는 데도 육지보다 공사비 부담이 크고, 각종 시설을 유지하는 데에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사람은 적지만 도로와 상하수도, 항만, 재난시설 등 기본적인 행정서비스를 줄일 수는 없다. 더욱이 울릉공항을 비롯한 대형 국책사업이 본격화되면 건설비뿐 아니라 시설 운영과 유지·관리 비용까지 뒤따른다. 지난 10일 울릉군의회 군정질문에서 대형 투자사업에 따른 군비 부담과 재정안정화기금 감소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남한권 울릉군수. 홍준기 기자
특별자치군이 실현된다면 매년 국비사업을 찾아다니는 방식에서 벗어나 울릉의 특수성을 반영한 안정적인 재원 배분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특별자치군의 핵심을 단순한 재정지원 확대와는 다르게 보고 있다. 남 군수는 "울릉도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다. 육지와 똑같은 기준으로 행정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역에서 풀 수 있도록 권한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권한을 줬다면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재원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생활이다. 울릉에서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분야로 꼽히는 것은 교통과 물류다. 주민들에게 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사람과 식료품, 건축자재, 각종 생활물자가 오가는 사실상의 생활도로다. 기상이 나빠 뱃길이 막히면 병원 진료가 어려워지고 물자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울릉군과 신안군이 특별법 개정을 공동 추진하면서 보조항로 확대와 정주생활지원금, 세제 지원 등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료 역시 섬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다. 울릉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육지 이송 여부가 생명과 직결될 수 있고, 전문 진료가 필요할 경우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한다. 원격의료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응급의료 인력과 상주 의료진, 환자 이송체계, 육지 대형병원과의 연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울릉군 보건의료원 전경. 홍준기 기자
청년 정착을 위한 주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공항이 들어서고 관광산업이 커지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지만 정작 사람이 살 집이 부족하다면 젊은 인구를 붙잡기 어렵다. 상편에서 짚었던 울릉공항 직원사택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항 인근에 직원 100여 명이 생활할 숙소를 짓기 위해 부지를 확보했지만 진입도로 문제에 막혀 건축허가 단계에서 멈춰 있다. 사업비를 확보하고 부지를 매입하는 것만으로는 울릉에서 사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별자치군을 통해 섬의 지형과 토지 여건을 반영한 별도의 행정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다만 특례가 개발을 쉽게 해주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관광객이 늘고 개발 수요가 커질수록 울릉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결국 세 번째 축인 결정권이 필요하다. 무엇을 개발하고 어디까지 보전할지, 주민들이 살아갈 공간을 어디에 확보할지, 관광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를 지역이 판단할 수 있는 폭을 넓히자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법을 통해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을 이양받고 도시계획과 환경,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지역 특성을 반영한 특례를 적용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역시 규제혁신과 환경자원 관리 등에서 별도의 특례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제주와 강원은 광역단체이고 울릉은 경북도에 속한 기초자치단체인 군이다. 기존 특별자치도의 권한을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이 아니라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사이의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부터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배상용 울릉발전연구원장은 특별자치군의 핵심을 지역에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라고 봤다. 그는 "울릉도는 같은 군 단위라고 해도 육지의 군과 조건이 다르다. 인구가 적다고 행정수요까지 적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섬이라는 이유로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며 "이런 문제를 중앙정부가 일일이 판단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한만 내려주고 돈을 주지 않으면 결국 군이 부담을 떠안게 되고, 반대로 돈만 지원하면 중앙정부 사업을 받아 집행하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며 "지역이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그것을 실행할 재원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이면 어둠속에 갇히는 울릉읍 사동마을 전경. 홍준기 기자
결국 특별자치군의 성패는 '무엇을 더 받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직접 결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교통과 물류를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의료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청년과 공공인력의 주거 문제를 어떤 기준으로 풀 것인지, 관광개발과 환경보전의 경계를 누가 정할 것인지가 구체적인 논의 대상이다.
교육 역시 울릉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모델을 고민해볼 수 있는 분야다.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교육기회가 줄어드는 대신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리고 육지 학교와의 교육 교류나 온라인 공동수업 등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 울릉 특별자치군 설치를 위한 별도의 법률이 국회에 발의돼 제도화된 상태는 아니다. 울릉군이 신안군 등과 연대해 관련 특별법 개정과 특별자치군 입법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앞으로는 울릉에 꼭 필요한 특례부터 추려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묻고 교통·물류, 의료, 주거, 교육, 재정, 도시계획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한 뒤 중앙정부와 경북도가 가진 권한 중 무엇을 넘겨받을지,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지를 구체적인 법 조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별자치군은 이름을 하나 더 붙이는 사업이 아니다. 배가 끊겨도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받을 길이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이 집을 구해 섬에 정착할 수 있어야 하고 관광객이 늘어도 울릉의 자연과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권한과 재원, 그리고 지역의 결정권이 있어야 특별자치군이라는 이름도 의미를 갖는다.
울릉도는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정한 사업을 받아 실행하는 데 익숙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업이 필요한지, 어떤 기준이 섬에 맞는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까지 지역이 직접 묻는 단계로 가려 하고 있다. '특별자치군'이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길 내용이다. 2028년 울릉공항 개항을 앞둔 지금, 울릉도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하늘길만은 아니다. 공항 이후의 울릉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정에 필요한 권한을 누가 가질 것인지. 울릉의 특별자치군 논의는 이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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