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 소식에 하루 90만원 들여 잡초 제거…이틀간 인건비만 180만원
급경사·고령화에 농사 포기한 농지도 상당수…“투기 농지와 같은 잣대 안 돼”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 소식에 불안을 느낀 울릉도의 한 고령 농민이 하루 30만원씩 인부 3명을 고용해 이틀째 비탈진 농지의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정비 전, 오른쪽은 잡초 제거 작업이 진행된 모습. 홍준기기자
"농사 안 지으면 땅 뺏어간다 카데. 겁나서 하는 거지 뭐." 울릉도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70~80대 고령 농민들이 수년간 손대지 못했던 산비탈 밭으로 다시 향하고 있다.
29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가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직접 풀을 베거나 인부를 고용해 잡목과 넝쿨을 걷어내는 농민들이 나타나고 있다.
울릉도의 한 산비탈 농지는 주변을 뒤덮은 잡초와 덩굴 사이로 농지 부분만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가파른 경사 탓에 농기계 접근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 농지 주인은 고령으로 직접 작업하기 어려워 하루 30만원씩 주고 인부 3명을 불렀다. 이틀째 이어진 작업에 인건비만 180만원이 들어갔다.
농작물을 심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로 판단될까 두려워 잡풀을 제거한 것이다. 농민 김성환(74)씨는 "내가 늙어서 농사를 못 짓는 것도 서러운데 땅까지 잘못될까 두려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라며 "평생 농사지은 땅인데 괜히 문제가 될까 봐 풀이라도 베는 것"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5월부터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소유·이용 실태를 파악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농지 투기와 불법 소유 등을 살피는 한편 농지가 실제 농업에 이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다.
정부는 장기간 농업에 종사한 농민의 불가피한 사정과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해 방치한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법 위반 농지를 찾아 처분하는 데 조사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이 빠르게 퍼지면서 고령의 농민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행 농지법상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농지를 빼앗거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정당한 사유 없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은 농지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처분의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행강제금은 감정가격 또는 개별공시지가 중 높은 금액의 25%까지 매년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울릉도 농민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육지와 다르다. 울릉도는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평지 농지가 드물고 급경사 밭이 많다. 농기계가 접근하기 어려운 농지도 적지 않다. 젊었을 때는 호미와 낫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고령이 된 지금은 밭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든 농민들이 많다.
농촌 인력 부족도 문제다. 어렵게 인부를 구해 하루 90만원을 들여 풀을 베더라도 실제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씨앗을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농지의 경작 여부만으로 고령 농민들의 농업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울릉군농업기술센터 농지팀은 "울릉도는 농지 대부분이 경사지에 있고 고령 농가도 많아 육지와 똑같은 기준만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농지를 실제로 이용하지 못한 사유까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울릉도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지 투기를 막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고령·도서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면의 한 농민은 "평생 농사지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 농사를 못 짓는 것과 농사를 지을 생각도 없이 땅을 사놓고 묵혀두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며 "조사할 때 땅만 보지 말고 농민의 사정도 함께 봐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농지의 투기와 불법 이용을 바로잡는 동시에 고령화와 지형적 한계로 농사를 이어가기 어려운 섬 지역 농민들의 현실까지 얼마나 세밀하게 반영할지 주목된다.
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