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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바다, 경주의 동해⑥] 파도와 시간이 만든 길, 감포깍지길

2026-10-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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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굴에 닿은 파도처럼…바다와 깍지 끼고 걷다

방파제가 감싼 포구 안에 작은 어선들이 머물고, 항구 너머로 동해가 펼쳐진다. 고래섬마을로 불리는 나정2리는 어촌뉴딜300사업을 거쳐 2023년 정비를 마쳤다.

방파제가 감싼 포구 안에 작은 어선들이 머물고, 항구 너머로 동해가 펼쳐진다. 고래섬마을로 불리는 나정2리는 '어촌뉴딜300사업'을 거쳐 2023년 정비를 마쳤다.

왕과 마을 찾아온 고래 이야기

고래섬 마을로 불리는 나정2리

항구의 밤 '신라 달밤 포차거리'

소나무길과 평화로운 모래밭길

신라 거마장 전승 담은 말 조형

바다가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용의 전설 두개의 동굴 전촌용굴

파도가 빚어낸 해식동굴 포토존

어느새 10월이다.


가을이 오면 바다로 가는 마음도 조금 달라진다. 그저 물속으로만 들어가고 싶던 여름을 지나, 이제는 물가를 따라 오래 걷고 싶어지는 시간이 왔다. 햇볕의 온기는 등에 남겨두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나는 리듬에 맞춰 걸음을 늦춘다. 경주 감포의 해안에는 이 리듬에 딱 어울리는 길이 있다.


깍지,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손가락을 포갤 때 마음은 포근해지고 어느새 주위의 풍경도 달라진다. 마주 잡은 손에 맞춰 걸음이 느려지듯 바다의 굴곡에 보폭을 맞추는 길, 감포깍지길이다.


◆고래를 품은 항구, 밤을 밝히는 마을


감포깍지길을 끼고 있는 나정항은 감포읍 나정리에 자리한 작은 어항이다. 어선들이 몸을 붙인 포구 안은 잔잔했고, 그 너머 동해에는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항구는 매일 돌아와 쉬는 아늑한 자리일 것이다. 방파제가 감싸안은 잔잔한 포구 안쪽,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마을의 일상이 그 안에 있다.


마을로 향해 가는 길에 고래를 만났다.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던 고래들이 골목 담장 푸른 벽면을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세라믹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고래는 햇빛이 닿는 면마다 수많은 조각으로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고래는 해변 광장의 돌 의자에도 새겨져 있고 카페와 횟집의 이름에도 들어 있었다. 먼바다에 있어야 할 생명이 낮은 집들 사이에 머무는 풍경은 낯설면서도 다정했다. 골목을 돌 때마다 고래의 등이 먼저 보였다.


나정항이 있는 나정2리는 '고래섬마을'로 불린다. 이름의 뿌리에는 바다를 지키는 왕과 마을을 찾아온 고래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 앞바다에 말등섬이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해룡이 된 문무대왕이 나타나 이를 내리쳐 부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그 주위로 고래들이 몰려들었다. 고래는 마을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고는 조용히 머물다가 떠났다는 전설이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잠시 오고 갔을 손길. 고래가 떠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 기억을 오랜 시간 이름으로 간직해 오고 있다.


이견대, 석가탑, 다보탑, 동궁원, 안압지, 첨성대 등 경주의 관광 명소를 모아놓은 간판들이 밤이 되면 하나둘 불을 밝힌다경. 주 나정항 신라의 달밤 포차거리.

이견대, 석가탑, 다보탑, 동궁원, 안압지, 첨성대 등 경주의 관광 명소를 모아놓은 간판들이 밤이 되면 하나둘 불을 밝힌다경. 주 나정항 신라의 달밤 포차거리.

항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는 마을 카페가 들어서 있고, 포구 한편에는 '신라의 달밤 포차거리'가 있다. 나도 모르게 옛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그 거리를 걷다 보니 경주의 이름난 관광지가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첨성대와 다보탑, 석가탑과 이견대, 안압지와 월정교도 있다. 밤이 되면 이들 이름을 내건 포차 간판들이 하나둘 빛을 발한다. 바다를 코앞에 두고 회와 해산물을 맛보는 경험은 제법 낭만적이다.


특히 주말 저녁이면 북적이는 인파 속에 항구가 활기를 띤다. 신라의 달밤 포차거리를 걸으며 입에서 자꾸 맴돌기만 할 뿐 기억이 가뭇한 그 노랫말을 찾아보았다. 그리곤 문득 발길을 멈췄다. 노래가사는 이랬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신라의 밤 노래를'


전촌항에서 바다를 향해 몸을 뻗은 말 조형물. 마을 북쪽 산세가 말이 누운 형국이라는 이야기와 신라시대 거마장 전승을 형상화했다.

전촌항에서 바다를 향해 몸을 뻗은 말 조형물. 마을 북쪽 산세가 말이 누운 형국이라는 이야기와 신라시대 거마장 전승을 형상화했다.

◆바다와 깍지를 끼고 걷다


항구 끝에서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섰다. 고래가 헤엄치는 담장을 지나면 길 건너편으로 넓은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나정고운모래해변이다. 그 이름처럼 고운 모래가 바다를 끼고 펼쳐져 있다. 약 500m 길이의 백사장 뒤로 소나무숲이 이어지고, 숲 아래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쉼터와 야영 공간이 자리한다.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모래밭은 폭이 넓어 바닷물이 멀리 물러난 자리에도 얇은 물기가 반짝였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발자국이 사라진 자리에는 물결이 만든 가느다란 선이 새로 생겼다. 단단한 방파제와 시멘트 바닥으로 이뤄진 나정항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이르면 발밑의 감각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정고운모래해변에서 북쪽으로 전촌솔밭해변을 지나면 전촌항에 닿는다. 나정의 골목에서는 고래를 만나더니, 여기서는 말을 만났다. 커다란 말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몸을 뻗고 있었다. 항구 입구의 '거마상'이다.


전촌항 일대에는 말과 관련한 옛이야기가 전한다. 마을 북쪽의 산세가 큰 말이 누워 있는 형국이어서 '거마산'이라 불렸고, 신라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병마가 주둔했던 곳이라 해서 '거마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말 조형물 아래에 서면 방파제와 항구, 멀리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 북쪽으로 접어들자 길이 해안을 따라 길게 휘었다. 길 한쪽에는 횟집이 즐비했고 길 건너편으로는 바다가 넘실댔다. 그리고 길 끝은 야트막한 산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감포의 항구와 마을, 해안과 산길을 엮은 감포깍지길, 그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전체 길이 약 80km에 이르는 감포깍지길은 여러 구간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전촌항에서 용굴과 해국길을 거쳐 감포항과 송대말등대로 이어지는 1구간은 경주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 여행 코스이자 감포의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구간이다. 특히 용굴로 향해 가는 데크길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솔잎 소리와 물소리를 번갈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길을 걷다 보면 바다가 내미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느낌이 든다. 깍지. 서로의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으면 마주 잡은 두 손 사이 빈틈이 줄어든다. 이 해안에서는 육지와 바다가 그렇게 이어져 있다. 저절로 보폭이 줄었다.


전촌항에서 사룡굴까지는 걸어서 약 10분이면 닿는다. 거리는 짧지만 길의 표정은 여러 번 달라진다. 나무 데크가 끝나자 흙길이 나타났고, 다시 바위와 자갈이 발밑을 채운다.


길 끝에서 바위 사이로 어두운 틈 하나가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안에서 파도 소리가 낮게 울렸다. 바다와 깍지를 끼고 걷던 길은 마침내 파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집 앞에 닿았다.


전촌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2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룡굴에선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단용굴에는 감포 마을을 수호하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동굴 포토존으로 가는 길은 밧줄을 잡고 바위를 넘어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 편한 신발이 필수다.

전촌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2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룡굴에선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단용굴에는 감포 마을을 수호하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동굴 포토존으로 가는 길은 밧줄을 잡고 바위를 넘어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 편한 신발이 필수다.

◆파도가 빚은 용의 집


전촌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두 개의 해안 동굴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오랜 세월 파도가 해안의 바위를 깎고 약한 틈을 넓히면서 만들어낸 해식동굴이다. 사람이 잠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까지 같은 자리로 얼마나 많은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났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용굴에 들어가는 것은 순전히 바다의 마음에 달렸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파도가 높거나 물때가 맞지 않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몸을 낮춰 굴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바깥의 햇볕은 검은 바위에 막혔고, 서늘한 물기와 젖은 돌 냄새가 느껴졌다. 파도가 들어올 때마다 물소리는 굴의 벽과 천장을 타고 깊어졌다. 바깥에서는 흩어지던 물소리가 안에서는 하나의 낮은 울림이 됐다.


뒤를 돌아보니, 끝없이 넓어 보였던 동해가 굴 입구의 검은 테두리 안에 담겼다. 바위의 모양에 따라 바다는 길쭉해졌다가 둥글어졌고,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푸른빛도 함께 흔들렸다. 그 이름 때문인지, 왠지 저 바다 어딘가에서 지금도 용이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룡굴에는 신라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살았고, 단용굴에는 감포 마을을 지키는 한 마리의 용이 머물렀다고 한다. 하나는 나라를 지키는 용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을 지키는 용의 집인 셈이다.


신라인에게 동해는 용이 사는 바다였다. 동해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을 시작으로, 바다를 앞에 두고 살아온 사람들은 파도가 드나드는 빈자리마다 마을을 지키는 존재를 두었다. 바다가 일터이자 삶터인 이들에게 바다를 지키는 용은 그야말로 생존을 좌우하는 절실한 존재였을 것이다. 배가 돌아오지 않은 저녁에는 수평선을 얼마나 오래 보았을까. 바람이 거세지는 밤이면 잠결에도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굴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그런 마음들을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누군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전설 속 용은 바다만큼 먼 존재이면서, 마을의 불빛만큼 가까웠을 것이다.


전촌용굴 안에서 한동안 바깥을 바라봤다. 파도는 들어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한 번의 파도는 바위의 모양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단단한 바위 안에 길을 냈다. 감포깍지길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길인지도 몰랐다. 이곳 경주의 바다와 마을, 자연과 이야기가 오랜 시간 깍지 끼고 나란히 걸어온 시간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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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 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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