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 이사·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이수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거문고를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 후드티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 말을 걸어도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도 있다. 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몇 번 현을 건드리다 손을 놓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거문고는 억지로 소리를 낸다고 좋은 울림을 주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쑹훙빙의 '관점'을 읽으며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책은 국제정세와 경제, 역사를 넘나들며 하나의 사건도 어느 자리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교실에서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 친구들과 부딪히는 아이, 말없이 혼자 있는 아이를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거문고 앞에서는 뜻밖의 모습을 만난다. 산만하던 아이가 한 음의 울림을 오래 듣고, 말이 없던 아이가 자신이 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술대로 현을 울렸다. 낮고 묵직한 소리가 교실 안에 길게 번졌다. 아이는 자신이 낸 소리가 신기한 듯 고개를 들었다. 짧은 눈맞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드티 모자를 벗는 날이 생기고, 마스크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순간 아이가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보물 악기 거문고는 기다림을 가르친다. 술대를 쥐는 법도, 현을 누르는 힘도 하루아침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음이 울리기까지 여러 번 손을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도 그렇다. 빨리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저마다의 속도와 소리를 기다려야 한다.
'관점'이 내게 남긴 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과 익숙한 판단에서 벗어나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한 아이를 이해하는 일도 그곳에서 시작된다. 부족한 것을 먼저 찾기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어쩌면 교육은 아이를 바꾸는 일에 앞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문고의 한 음이 오래 남듯, 기다려준 시간도 언젠가는 아이의 마음속에 긴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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