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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길] 기다려야 보이는 아이

2026-10-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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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 이사·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이수자

김지성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 이사·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이수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거문고를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 후드티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 말을 걸어도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도 있다. 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몇 번 현을 건드리다 손을 놓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거문고는 억지로 소리를 낸다고 좋은 울림을 주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쑹훙빙의 '관점'을 읽으며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책은 국제정세와 경제, 역사를 넘나들며 하나의 사건도 어느 자리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교실에서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 친구들과 부딪히는 아이, 말없이 혼자 있는 아이를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거문고 앞에서는 뜻밖의 모습을 만난다. 산만하던 아이가 한 음의 울림을 오래 듣고, 말이 없던 아이가 자신이 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술대로 현을 울렸다. 낮고 묵직한 소리가 교실 안에 길게 번졌다. 아이는 자신이 낸 소리가 신기한 듯 고개를 들었다. 짧은 눈맞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드티 모자를 벗는 날이 생기고, 마스크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순간 아이가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보물 악기 거문고는 기다림을 가르친다. 술대를 쥐는 법도, 현을 누르는 힘도 하루아침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음이 울리기까지 여러 번 손을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도 그렇다. 빨리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저마다의 속도와 소리를 기다려야 한다.


'관점'이 내게 남긴 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과 익숙한 판단에서 벗어나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한 아이를 이해하는 일도 그곳에서 시작된다. 부족한 것을 먼저 찾기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어쩌면 교육은 아이를 바꾸는 일에 앞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문고의 한 음이 오래 남듯, 기다려준 시간도 언젠가는 아이의 마음속에 긴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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