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글씨라며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라는 서예 작품을 소개했다.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이다. 그런데 작품에 적힌 '박원근'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물관의 검증 결과 박중양의 작품으로 확인됐다. 작품은 철거됐고, 유홍준 관장은 사과했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유 관장이 '착오'와 '불찰'이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유홍준은 어떤 사람인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집필한 미술사학자로 인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사람이다. 그는 학술 영역에 머물던 문화유산을 시민의 삶 속으로 불러왔다. 그의 책을 읽고 빈 절터에도 버스를 타고 답사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름 없는 석탑 앞에서도 발길을 멈추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용했던가. 문화유산을 보는 국민의 눈을 열어준 선구자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그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렵다. 유 관장은 문제의 작품을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5만 원에 구입했다. 자신의 소장품을 직접 추천해 국가박물관의 특별전에 올렸다.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외부 제보로 진위가 확인되자 박물관의 역량 부족과 실수라고 사과했으나, 작품이 자신의 소장품이며 자신이 작품을 추천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거듭 제기되자, 비로소 '중대한 착오이자 불찰'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불찰(不察)을 '조심해서 잘 살피지 아니한 탓으로 생긴 잘못'이라고 풀이한다. 작품의 필자를 잘못 판단한 것은 불찰일 수 있다. 자신의 학문적 식견을 과신한 것 역시 '불찰'에 해당할 수 있지만, 자신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밝히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과 알고도 공개하지 않은 일은 '불찰'로 설명할 수 없다.
유 관장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자랑으로 비칠까 봐 소장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나중에는 미술사가로서 부끄러웠다고 해명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규정에 따라 밝혀야 할 사실을 밝히는 것이 어째서 자랑인가. 학자로서의 체면이 국가기관의 투명성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은 유홍준 개인의 박물관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다. 관장의 학문적 권위가 아무리 높아도 검증 절차를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면 더욱 엄격한 검증과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 권위가 클수록 그 권위를 견제하는 장치도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홍준은 국민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작품의 필자만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검증이 틀렸을 가능성,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공직자의 도리, 사적 판단이 공적 업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교훈 등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저술 과정에서 나왔던 수많은 오류 관련 논란도 재소환되고 있다.
그의 명성과 성취가 컸기에 실망도 크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여전히 옳다. 이제 그 말을 유홍준 관장에게 돌려주고 싶다. 문화유산을 아는 것만큼 자기 잘못을 제대로 보는 눈도 필요하다. 불찰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잘못이 있다. 또, 불찰이라는 말 뒤에 숨겨서는 안 되는 책임도 있다. 학자적 양심으로 크게 실망한 국민께 드릴 수 있는 사과와 위안에 대해 더 고뇌해야 한다. 사퇴만으로 부족하다.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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