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유치보다 신뢰가 먼저
서울행 환자들 발길 돌릴까
대학병원 경쟁력은 실력에
지역의료 성패는 인재확보
의대 설립이 의료 혁신으로
영남일보 경북본사 피재윤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의과대학 유치의 길이 열렸다. 국립경국대 의대 신설이 확정되면서 경북 북부권에도 의료 인재 양성의 토대가 마련됐다. 그러나 축하의 박수 뒤에 질문이 남는다. 과연 지역민은 새 대학병원을 믿고 생명을 맡길 것인가.
나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정밀검사가 필요하면 수도권 대형병원을 먼저 떠올린다. 지역 의료진을 불신해서만은 아니다. 축적된 임상 경험과 명성, 치료 성과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생명이 걸린 문제 앞에서 환자는 지역에 대한 애정보다 치료에 대한 확신을 구한다.
중앙선 KTX 개통은 이런 현실을 선명하게 했다. 안동에서 서울까지 2시간 안팎.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반갑지만 지역 의료에는 양날의 칼이다. 철길이 가까워질수록 환자의 발길은 서울로 향하기 쉬워졌다. 교통 혁신이 의료 쏠림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새 대학병원의 경쟁 상대는 인근 병원이 아니라 수도권 대형병원이다. 국립의대 설립의 기대효과는 크다. 의료인력 양성과 응급·중증질환 진료 기반 확충은 물론 교육·연구·바이오산업의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의료 취약지라는 굴레를 벗어날 기회다.
그러나 의대 설립과 경쟁력 있는 대학병원 육성은 다른 문제다. 병상을 늘린다고 명의가 생겨나지 않는다. 대학병원 간판이 신뢰까지 보증하지도 않는다. 의료 경쟁력은 사람과 시스템, 축적된 경험과 치료 성과에서 나온다.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진료 수준이다.
우수 의료진 확보는 난제다. 신설 의대는 교수 채용부터 기존 대학병원들과 경쟁해야 한다. 수련 환경과 연구 여건, 안정적인 근무 기반 없이는 인재를 붙잡기 어렵다. 길러낸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떠난다면 의대는 안동에 남고 의료인력은 서울로 향하는 역설이 생긴다.
그렇다고 지역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의료인의 경쟁력을 재단해서도 안 된다. 의사의 실력은 대학 이름보다 교육의 질과 수련 환경, 임상 경험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사로 성장하느냐다.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모든 분야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응급의료와 심뇌혈관질환, 고령층 필수의료부터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기존 의료기관과 협력해 지역에서 치료가 완결되는 체계도 중요하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2030년 첫 신입생이 입학하더라도 의사가 되기까지 최소 6년이 걸린다. 전문의 양성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의 의대 설립만큼 지금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일도 절박하다. 지역민의 생명은 개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립의대 유치는 역사적인 성과다. 그러나 유치의 성공이 곧 의료의 성공은 아니다. 이제 관심은 누가 유치했느냐에서 어떤 병원을 만들 것이냐로 옮겨가야 한다. 정치적 성과보다 의료의 질을 높일 전략과 투자가 중요하다.
언젠가 지역민이 중증질환을 진단받고도 서울행 열차표부터 알아보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 생기는 날이다. 그날이야말로 국립의대 유치의 진정한 완성이다.
의대를 세우는 데는 예산과 제도,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과 실력의 축적이 필요하다. 건물은 돈으로 지을 수 있어도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안동에 필요한 것은 의과대학 하나가 아니다. 시민이 생명을 기꺼이 맡길 수 있는 병원이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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