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폭포·용계 은행나무에 얽힌 기묘한 전설…
외가 가는길·산골 예배당서 듣고 배운 수많은 이야기
밤잠없는 내게 무궁한 신비와 상상을 자극했다
[문학의 産室 경북 .끝] 산과 강, 바다가 글을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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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물 속에 잠긴 도연폭포. 작가는 어린 시절 보았던 도연폭포를 '소리가 웅장하고, 기화요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절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물 위로 어렴풋이 흔적만 남아 있다. |
◆예배당 종소리와 절간의 범종소리
미르는 러시아어로 '작은 마을'이라는 뜻인 동시에, '우주'라는 뜻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내 유년기 고향 박실과 박실에서 상상했던 세계이다. 즉 성경 속의 숱한 나라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역사였고, 뒤에 중·고등학교 때의 세계사와 세계지리 그리고 문학작품 중의 인물들 이름이었다. 특히 역사책이나 작품 중의 인물 이름이 산골 박실에서 예배당에 다니며 듣고 배운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를 좀 잘했다면, 고향에서 성경을 통해 미리 들어온 이름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일요일이면 엄마는 나를 교회로 빼돌렸다. 초가지붕 예배당은 종루가 무척 높았고, 나는 성경 속 인물과 그들의 삶을 금방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훗날 왕이 되었고 장군이었고 시인이고 음악가였던 다윗을, 그의 어릴 적 소년목동으로 몹시 사랑했다. 나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소년 예수와 소년 다윗을 혼동하곤 했다. 둘 다 내 또래 아이로 동일한 사람같았고, 어른들로부터 듣던 옛날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했다. 그렇게도 힘들게 미국유학을 한 것도 어릴 적에 상상했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혼자서 산길 들길 고갯길을 걸어 십리 밖 예배당을 다녔다. 성경에서 이상한 이름의 나라와 신, 인물들의 성장과 사랑과 갈등과 떠남과 돌아옴과 신과의 약속에 가슴 설·고, 밤중에 잠이 깨면 보이지 않는 신(神)과의 접신같은 환상도 좋았다. 우리의 민속신앙으로 용신·서낭신·칙간신·조왕신·성주신·삼신·걸신 등 무수한 민속신들 위에 옥황상제보다 더 상위의 신으로 하나님을 상상했다. 아기산 황산사에서 새벽마다 들려오는 범종소리와 새벽 예배당의 높은 종루에서 쏟아지는 종소리는 다르면서도 같았고, 올빼미삼신으로 태어났다는 밤잠 없는 내겐 무궁한 신비와 상상을 자극했다.
#교회마을 십리 밖에 나는 살았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새벽이면 들려오는/ 댕그랑랑랑아아 댕그랑랑랑아아/ 문풍지 소리만큼 어린 숨소리를/ 잠귀가 밝았을까 나는 들었다/ 일어나아아아 일어나아아아/ 귀에 익은 어린 음성/ 소년 예수가 내 귓볼에다 그렇게 소근댔다/ 십리길 멀다 않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까망머리 덥고 자는 내 소라귀로/ 새벽마다 달려오던 그 맑은 종소리…
'그리운 종소리'라는 제목의 이 소품이 이런 배경에서 쓰여진 듯하다. 내 평생의 학문적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한국의 여성 및 아동 민속연구와, 친가와 외가의 엄격한 유교 관습은 기독교와 갈등하고 상생해오면서 나를 위해 각자의 몫을 담당해온 게 아니었을까.
◆도연폭포·용계 은행나무와 약술 안동소주
음력설이 지나면 나는 외가 세배차 용계로 보내졌다가 보릿고개를 나고 새 옷에 살이 통통 쪄서 돌아오곤 했다. 외가마을 입구에는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외가동네 아이들과 은행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천둥·벼락을 피하며 은행나무의 슬픈 전설을 듣고 놀았다.
외가 가는 길에는 만우정 고개 넘어 정자와 재궁과 알록달록한 과녁의 활터가 푸른 숲 속에서 참 고왔고, 만우정 고개에 올라서면 도연폭포 소리가 쿵쿵 들렸다. 폭포 소리는 웅장했고, 폭포 아래로 흐르는 악새 물가에는 과거에 낙방한 젊은 선비의 혼령과 조개가 된 처녀의 전설도 있었다. 물가로 석문재 바위 길에 한시가 새겨진 바위들이 있었고, 어떤 때는 문둥이들이 숯으로 쓴 한글시도 있었다.
외갓집 갈 때는 늙수그레한 노인을 한님으로 구해 우리의 보호자로 가곤 했는데, 어느 핸가는 한님을 구할 수 없어 조부가 우리를 데리고 가시게 되었다. 악새 물가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사람이 안보였다. 누가 와서 배를 태워 우리를 월천(越川)해줘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조부가 나를 업고 물을 건너려 등돌려 앉고, 엄마는 버선을 벗고 물을 건넜다. 그때 조부는 나에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할아비와 어미가 발벗고 냇물 건넜단 말을 해선 안된다고. 그 말을 하는 즉시, 우리는 상눔이 된다고. 지금 생각하면 물이라는 상징성과 몸의 노출을 금기했던 때문이리라. 여름에도 여인들은 버선을 신었고, 우물길에 남정네들과 마주치면 물동이를 인 채로 뒤돌아서 내외(內外)를 했으니까.
우리를 보호하여 외가마을까지 동행하신 조부는 내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조부가 데리고 온 것이 아니고 한님이 우리를 데리고 왔는데, 화급한 볼 일로 다른 데로 갔다고 하라고. 아니나 다를까 외가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주치는 이들마다 한님은 없이 모녀만 왔느냐고 놀랐고, 엄마는 한님이 화급한 볼 일로 다른 데로 갔다는 거짓말로 체면을 세웠다. 그때 이래로 엄마는 늘 "체면은 밥보다 더한 것을 먹여준다"고 했던 것 같다. 도연폭포는 명주실 몇 꾸리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깊이였는데, 6·25전쟁 이후에는 폭포바위 굴에 공비들이 산다고, 외가마을은 물론 우리 마을에도 와서 양식과 의복을 약탈해 가는 공비가 바로 폭포바위 굴에 은신한다고들 했다.
도연폭포 길은 참말로 아름다웠다. 갈봄으로 자주 다녔는데, 기화요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절경이었다. 산대추와 산머루 등이 주저리로 우거졌고, 냇가 복숭밭의 복숭아 맛도 기막혔다. 만우정 재궁은 6·25전쟁 이후 소개령으로 폐가가 되어 무너졌다. 그러나 봄에는 찔레꽃이 만발했고, 우물에는 물뱀들이 헤엄쳐 놀았기 때문에 목이 말라도 마실 수가 없었다. 가을에는 우거진 수풀 속에 붉게 익은 감과 배가 우짖고 날아다니는 새들과 함께 기막힌 산수화를 이루었으나, 무너져 흉가가 되어 귀신이 나올 듯 한 기와집들, 그 몰락과정을 오가며 목도했다. 나는 그 폐허에서 풍겨나는 드높은 미학을 느꼈다. 폐허의 향기랄까. 폐허야말로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숭고함이 감도는 것이라고 지금도 단언하고 싶을 정도였다. 특히 무너진 정자는 독학으로 동양철학의 거목이 된 유정기 교수가 오동지 섣달에도 냉돌에 곧추앉아 얼음 낀 물에 불린 생쌀을 씹으며 공부했다는 집이었다. 내게는 오빠뻘 되는 분이었는데, 후에 홀로 한글전용에 반대하다가 문교부로부터 파면당해 충남대학교에서 쫓겨나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외가 가는 길은 엄마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산길에서 사람 해골을 보면 옷이라도 벗어 싼 뒤 양지에 묻어줘야 하고, 향화(香火)가 끊어진 무덤 비슷한 두견총(杜鵑塚)을 보면 진달래 한 가지라도 꺾어 꽂아줘야 하고, 산길 가다 밤이 되면 무덤 옆이 가장 안전한데 무덤 속 주인이 짐승들로부터 자기 손님을 보호해 주고, 훈훈한 바람이 느껴지면 짐승이 오지만 찬 바람이 느껴지면 사람이 오고, 사람이 짐승보다 더 무섭다고도 했다.
나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날 낳으러 외가에 가니, 외숙들이 미성(未成)인데 출가외인이 먼저 출산해 친정의 정기를 빼간다고 외조부는 당장 돌아가라고 호령호령했단다. 그러나 외증조모가 날이 어두우니 내일 돌려보내자고 했는데, 가마에 시달린 엄마는 그날 밤에 나를 낳아버렸다. 그 일을 시작으로 평생 출가외인 대접으로 쌓인 서운함에, 엄마는 늘 "너 외조부 돌아가시고 내 눈에 눈물나면 재 집어넣어라"라고 했다. 아기 적의 나는 큰 외숙의 치아에 엎어지는 바람에 콧등에 구멍이 뚫렸다. 지금도 그 흉터가 외가 추억이 되곤 한다.
이 풍진 세상을/ 아모리 아모리/ 저 세상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해도/ 때없이 맞닥치는/ 겨울비 같은 좌절과 낭패를/ 들켜지고 마는 굴욕과 수모…를/ 불 싸질러 흔적 없이 사루어 주는/ 45도 火酒(화주) 안동소주
사나이의 눈물 같은/ 피붙이의 통증 같은/ 첫사랑의 격정 같은/ 내 고향의 藥술 그 얼로 취하여/ 이 풍진 시대로/ 저 시대의 너털웃음 웃어가며/ 성큼성큼 건너뛰며 나 살으리. -'안동소주' 전문
6·25전쟁 직후 암소골에서 소를 잡아 우리도 소고기를 먹었는데, 여러 집에서 식중독에 걸렸다. 나는 입 속으로 놋숟가락이 들어오고 술냄새가 나고 정신을 잃었다가 살아났는데, 약술인 안동소주 덕분이었다. 소줏고리 주둥이에 아래위를 자른 빨간 고추를 끼워 잡맛 내는 잡귀를 막으며 소주맛을 알큰하게 했는데, 아직도 안동소주 맛이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땐 집집마다 담가서 약용으로 보관했다.
#시인 유안진은
1941년 안동에서 태어나 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달하'에서 최근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까지 모두 14권의 신작시집과, '세한도 가는길' 등 다수의 시선집이 있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등 4편의 장편민속소설과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산문집도 펴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특별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유심작품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와 서울대를 거쳐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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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마을 입구에 서있는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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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중편교회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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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중독에 걸린 작가가 약대신 먹었던 안동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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