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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對 신작] 호프 스프링즈·홀리모터스

2013-04-05
[신작 對 신작]   호프 스프링즈·홀리모터스



★ 호프 스프링즈

결혼 30년차 부부의 ‘섹스리스’ 극복 위한 상담기

“서로의 느낌을 말과 행동을 통해 표현해라! 그것이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존경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 칼럼니스트 김경희 원장의 이 말은 권태기를 겪고 있는 수많은 섹스리스 부부에게 고하는 일종의 부부생활 지침서와 같다. ‘대화 없이 섹스리스를 해결할 수 없고, 섹스리스 해결 없이 위기의 부부를 극복해 낼 수 없다’는 그의 지론은 부부간의 스킨십과 솔직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섹스를 알아야 사랑도 가능하다는 얘기. 이는 ‘호프 스프링즈’의 케이(메릴 스트립)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부부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케이와 아놀드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결혼 30년차 부부.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란 말처럼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래 전부터 각방을 쓰기 시작한 아놀드는 아내보다 신문과 골프 채널을 보는 게 익숙해져 있는 중년의 남자. 용기 내어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아내에게 그는 늘 무심하고 시니컬한 말로 상심을 준다.

그야말로 한 집에 같이 사는 룸메이트와 다를 바 없는 이 부부에게 사랑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결정적인 건 섹스다. “우린 22살이 아니야”라며 노골적으로 피하는 아놀드 때문에 5년째 섹스는 고사하고 흔한 스킨십도 없다. 결국 남편과의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케이는 펠드 박사(스티브 카렐)가 운영하는 ‘부부 심화 상담 컨설팅’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이제라도 이혼하고 싶다.” 2012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이상 산 부부의 이혼율은 최근 21년 새 5.2%에서 25%로 5배나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중년의 이혼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년 여성의 배우자 만족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케이는 성실한 직장인이자 외도 한번 한 적 없는 충실한 가장인 아놀드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부가 아닌, 여자로서 케이는 행복하지 않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에서 제2의 결혼서약을 꿈꾸는 소녀적 감성을 지닌 케이는 육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 주고받는 사랑의 마음과 소통을 원한다. 한마디로 진짜 부부답게 살고 싶은 거다. 영화는 그런 케이에게 “30년 살았으면 됐지! 그럼 우리가 가짜 부부냐”며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아놀드가 부부상담을 받기 위해 함께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호프 스프링즈’는 케이와 아놀드, 한 섹스리스 부부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일주일간의 부부상담기다. 사랑이 식어버려 몸도 마음도 멀어진 이 부부의 카운셀링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랑의 경험이 있는 이들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들이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눈만 마주쳐도 짜릿했던 연애 초반과는 달리 큰맘 먹고 유혹해도 꿈쩍도 안 하는 상대방의 태도라든가, 기념일 선물은 가전제품으로 때우는 모습 등은 대다수 중년부부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다시 잘 살아보려고 오는 분도 있지만, 끝내고 싶어서 오기도 합니다”라는 펠드 박사의 말은 삐딱한 시선을 보이고 있는 남편 아놀드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자,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세상 남편들에게 설파한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재미는 카운셀러 앞에서 그동안 서로에게 숨겨왔던 속마음을 드러내며, 솔직 화끈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펠드 박사는 두 사람에게 매일 하나씩 공동의 과제를 내준다. 예를 들면 ‘껴안고 자기’ ‘섹스 하기’ 등이다. “이건 미친 짓이야”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던 아놀드의 변화와 케이의 도발적이고 과감한 시도가 차츰 절충점을 찾게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케이와 아놀드 부부의 상담과정은 이처럼 남녀의 숨겨진 속사정과 결혼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완성은 메릴 스트립과 토미 리 존스의 깊이 있는 연기 덕에 가능할 수 있었다. 현실 속 부부들에게 결혼과 행복에 대한 진지하고 유쾌한 성찰의 시간이 될 영화다.


[신작 對 신작]   호프 스프링즈·홀리모터스


★ 홀리모터스

하루 동안 아홉 번의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산다면…

딸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선 백발의 사업가가 리무진에 탄다. 차에 타자마자 업무상 전화인 듯 어려운 경제 용어까지 들먹이며 진지하게 통화를 하던 그는 이내 리무진에 딸린 거울의 조명을 켜고 가발을 꺼내 손질한다. 넓다란 리무진 안은 마치 갖가지 옷과 물건이 즐비한 분장실 같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스카(드니 라방).

하루동안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매번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는 게 그의 일이다. 오늘 그가 배정받은 역할은 걸인, 모션 캡처 전문 배우, 광인, 아버지, 아코디언 연주자, 암살자 등 모두 아홉 개. 리무진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그를 데려다 놓으면, 차 안에서 분장을 마친 오스카는 그 곳에서 배정받은 역할을 연기한다.

‘홀리모터스’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폴라X’ 이후 13년 만에 만든 장편 영화다. 리무진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홉 번의 변신을 하는 오스카의 하루를 그린다. 아홉 번의 변신은 그대로 삶의 아홉 가지 단면이 된다.

오랜 공백에 대한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영화적 형식과 장르의 다양성을 마음껏 탐구한다. 그리고 퍼즐을 맞추듯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조각들을 곳곳에 끼워 넣는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노상 살인극, 옛 연인 진(카일리 미노그)과의 우연한 만남을 보고 있노라면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영화 십수 편이 한데 묶여 있는 것 같다.

특히 광인의 에피소드에서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2008년에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광인의 주인공 광인(드니 라방)을 도쿄가 아닌, 프랑스 묘지 지하도로 불러냈다. 아코디언 연주자의 막간극에서는 경쾌한 행진곡이 등장하고, 암살자와 희생자의 에피소드는 간담 서늘한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전 영화들에 대한 헌사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운전사 셀린(에디트 스콥)이 하늘색 마스크를 쓴 건, 에디트 스콥이 스물세 살 때 출연한 조르주 프랑주 감독의 ‘얼굴 없는 눈’(1960)에 대한 오마주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컴백 첫 일성으로 “영화의 원초적인 힘, 신의 눈길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한 건 가상과 현실에 대한 구분과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던지는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즉 디지털 시대로 오게 되면서 가상과 현실의 모호함이 극명해졌다는 사실을 그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살아 있던 초기 흑백영화 필름 삽입을 통해, 그 시절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오스카는 그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이다. 그는 카멜레온처럼 매번 옷을 바꿔 입으며 여러 개의 삶을 능숙하게 펼쳐낸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 그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느껴질 정도다.

‘홀리모터스’는 9개의 현 사회에 대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고민이 담긴, 자기반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구체화시킨 건 그의 영원한 페르소나 드니 라방이다. 드니 라방은 극 중 표현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가상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흡착시켜 이를 완벽히 표현해낸다.

아닌 게 아니라, ‘홀리모터스’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드니 라방이 펼치는 1인 9역의 놀라운 연기를 감상하는 데 있다. 역할에 따라 외모는 물론이고 숨소리마저 달라지는 기묘한 풍경을 관객은 무언가에 홀린 듯 러닝타임 내내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레오스 카락스와 드니 라방의 만남이 더없이 반가운 이유다.

오랜 심연의 고독을 이겨내고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과거의 명성과 환호에 걸맞는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런 점에서 ‘홀리모터스’는 인생의 거센 파도를 거쳐 온 모든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레오스 카락스의 담담한 위로이자 신성한 찬가다. 레오스 카락스는 죽지 않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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