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비빔밥, 견과류가 듬뿍 든 장으로 산삼배양근·뽕잎을 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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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내 제거를 위해 맥주를 사용한 한방돼지수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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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비빔밥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시루방의 비빔밥. 고명으로 산삼배양근이 올려져 있다. |
영천은 한약재가 명물이다.
국내에 한약재로 명성을 날리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대구 약전골목, 서울 경동시장, 충북 제천 등이 손꼽히는데, 영천 역시 한방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고장이다. 전국적인 판세를 볼 때 한약 유통으로는 제천에 1위를 내주기는 했지만, 도매상을 포함해 한약재 거래업소가 150곳에 달해 경북 일대에서는 한약 유통이 가장 활발하다.
영천에서 거래되는 한약재가 국내 유통량의 30%에 이르고, 그 종류만도 480여종. ‘영천에 오면 구하지 못하는 한약재가 없다’는 소문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특히 영천에서는 매주 한약 도매시장이 열리고 있어 지금도 이 일대 사람들이 약재를 거래하기 위해 모여든다. 전통적으로 영천장은 끝자리가 2·7일인 날에 열리는데, 한약만을 거래하는 도동 한약유통단지는 새벽에만 주로 연다. A부터 E까지 구역이 나뉘어 있다. 이 유통단지에만 100개 이상의 한약방이 있다.
영천에는 와인도 명물이다.
영천의 한국와인에서 생산한 ‘뱅꼬레 스타베리오디와인’이 지난 13일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제7차 세계물포럼 킥오프회의 환영행사 만찬주로 선정됐다.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면서 충북 영동과 국내와인업계의 쌍두마차로 불린다. 영천에는 한국와인, 경북대포도마을, CIEL, 까브스토리 등 네 곳에서 매년 25만여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와이너리는 모두 18군데가 있다. 총 브랜드는 14종. 인지도가 높은 것은 한국와인의 레드와인 뱅꼬레. 지자체 첫 와인학교도 영천에 있고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영천와인사업단도 만들었다.
안동이 간고등어, 영주가 문어라면 영천은 또한 돔배기의 고장이다. 이런 명물의 고장에 내공있는 영천비빔밥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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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시루방’의 오너셰프 장태자씨. |
계란·고추장은 배제하고
나물류로 야콘·황백지단
두릅·더덕장아찌 등 올려
육회 대신 다진 볶음 쓰고
비빔밥 옆에 돔배기 매칭
약선요리전문가 도움받아
한방돼지수육에도 도전
맥주로 잡내 제거해 특이
◆떡집에서 만난 비빔밥
영천과 오래 동고동락한 떡집이 있다.
바로 1969년 완산동 시장 근처에서 문을 연 서울떡집. 2009년 시어머니(이갑선 여사)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2대 여사장 장태자씨는 시어머니로부터 손맛의 비밀을 이어받았다.
떡도 진일보했다. 송편만 해도 손자국이 남게 모양을 잡은 뒤 채반에서 쪄 내는 손송편 대신, 여기는 쌀가루를 쪄낸 뒤 모양을 내는 ‘익송편’을 고집한다. 특히 당귀, 백봉령 등 영천에서 구하기 쉬운 한약재를 갖고 ‘오색한방송편’도 개발했다.
특히 아침 겸 점심 대용으로 젊은 층에 인기가 좋은 낱개포장 식인 영양떡도 5종(자색고구마, 오디, 뽕잎, 흑미, 단호박)을 개발해 퓨전떡 시대를 개척했다.
시루방은 이미 영천농업기술센터와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2010년부터 농가맛집에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한방신활력사업을 거쳐 최근에는 예비 사회적기업에도 선정됐다.
영천다문화 센터, 소비자연맹, 녹색식생활체험학교, 한방투어단 등과도 연계해 다양한 떡체험프로그램도 가동했다. 특히 패스트푸드와 빵에 길들여진 10~20대에게 우리 전통떡 알리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영천 비빔밥의 신지평을 열다
고민을 제법 했다.
대표메뉴를 뭐로 할까. 그동안 영천은 한약재의 고장은 물론, 돔배기·육회·고디탕도 나름대로 전국적 인지도를 가졌다.
일단 세 가지 비빔밥 개발에 나선다. 산삼배양근비빔밥·뽕잎비빔밥·콩나물비빔밥이다. 재료는 특별하게 구하기 힘든 경우가 아니라면 영천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하기로 한다.
비빔밥 옆에 돔배기와 한약재를 매칭시켰다. 일단 계란프라이, 고추장 등이 들어가는 식감을 떨어뜨리는 비빔밥에서 벗어나자고 다짐한다.
문제는 산삼배양근을 고명으로 올리는 대목. 산삼배양근이라는 것은 자연형태로 자생하는 산삼을 가정에서 배양한 걸 말하는데, 시루방의 비빔밥은 오로지 영천에서 40~50일간 배양한 것만을 쓴다. 생각보다 산삼의 향이 짙지 않은 건 뿌리가 잔 산삼배양근인 탓이다.
그리 맵지 않은 비빔밥용 장에는 땅콩, 잣, 호두 등의 견과류가 듬뿍 들어가고 첨가제는 최대한 배제했다. 배양근이 건강에는 좋지만 사실 식감은 별로다. 그냥 씹어먹으면 파뿌리 먹는 맛이다. 그래선 비빔밥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없어 참기름을 조금 넣어 무쳐냈다.
다음은 비빔밥 재료 선정.
나물류의 경우 시금치, 애호박 등 제철 푸른나물, 이 밖에 고사리, 도라지, 산나물, 묵나물, 무나물, 버섯류, 황백지단 등을 주전선수로 선발했다. 이 밖에 깻잎·야콘·두릅·더덕장아찌, 그리고 다진 쇠고기볶음 등도 마련했다. 육회를 고명으로 올리는 것도 고려했지만 자칫 육회비빔밥으로 추락할까봐 결국 포기한다.
비빔밥 장을 어떻게 만들 건지도 고심할 대목.
고추장은 절대 안 된다고 고집했다. 맵고 자극적이어서 다양한 식재료를 한 가지 맛으로 뭉뚱그려 버리기 때문이다. 이어 영천비빔밥 전용 장 개발에 나선다. 산삼배양근에 인삼진액, 견과류, 갖은 양념을 숙성시킨 ‘스페셜 비빔밥용 전용장’이 탄생하게 된다.
그녀는 이제 영천비빔밥 전도사가 다 됐다. 가끔 기존 비빔밥처럼 고추장을 찾으면 “그게 비빔밥 맛을 죽이는 장본인”이라면서 자기 집 양념장을 적극 추천한다.
나물 양 조절도 참 어렵다.
나물보다 밥이 많아도, 나물이 많아도 식감이 확 줄어든다. 물론 어떤 채소류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밥의 양도 달리해야 된다. 맛에 대한 직관이 발달하지 않으면 제대로 비율을 안배하기 힘들다. 일단 시루방에선 밥과 채소류를 1대 1 비율로 갔다.
밥도 대충 지어선 안 된다. 전주비빔밥에서는 잘 비벼지라고 사골육수로 밥을 짓는다. 시루방에서는 소금, 식초, 올리브유 등을 섞는데 그럼 밥맛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뽕잎비빔밥용 뽕잎은 영천 고경 뽕잎자생단지에서 가져온다. 한 번 데쳐서 냉동 보관해 1년 정도 사용한다. 콩나물도 일반 메주콩으로 싹을 낸 건 풋내도 진하고 물기가 많아 식감을 상하게 한다. 그래서 콩나물 전용콩을 사용하는데, 훨씬 부드럽고 질긴 섬유소도 거의 남지 않는다.
묵은지도 한방수육에는 2년 정도 된 것을 낸다. 김장 때는 멸치 대신 꽁치젓갈을 사용한다. 영덕에 사는 동생이 보내온단다. 공장간장도 아예 멀리한다. 맛간장은 집간장에 갖은 양념을 오래 달여 만든다. 그래서 비빔밥 가격이 비싸다. 원래 2만원 받아야 되는데 현재는 1만5천원.
◆돼지수육에 도전하다
비빔밥 레시피를 완성한 뒤 한방돼지수육에 도전했다.
한방재료의 메카인 영천의 대표 수육을 만들고 싶었단다. 일단 한방수육 육수를 어떻게 만들까를 놓고 고심하다가 지역의 대표적 약선요리 전문가인 대구한의대 김미림 교수에게 자문했다.
그렇게 해서 감초, 팔각, 생강, 양파, 대파, 당귀, 황기 등 20여가지 재료를 비슷한 비율로 망 안에 넣는다.
돼지는 10~15㎏ 삼겹살을 사용하고, 이를 4℃ 냉장고에서 48시간 숙성시켰다. 고기를 삶아야 하는데 찬물에 넣고 삶으면 육즙이 다 빠져나와 육질이 푸석푸석해진다. 일단 찬물에 재료를 넣은 망을 넣고 끓인다. 이때 뚜껑을 닫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만 졸고 화근내가 나서 맛을 버리게 된다. 45~50분 익혔다가 끄집어내서 찬물에 헹군 뒤 더욱 단단해진 고기를 썰어 내서 식탁에 낸다. 냉장 보관한 뒤 썰면 고기가 쫄깃하지 못해 부스러진다. 수육 곁반찬으로는 장아찌와 묵은지를 낸다.
잡내 제거를 위해 맥주를 넉넉하게 넣는다. 물 1ℓ에 맥주 500㎖를 섞는다. 청주와 소주보다 맥주가 더 낫단다.
◆돔배기 요리 특징
영천 돔배기 도매상가에서 구입한 뒤 냉장고에서 보관하는데, 1주일가량 두고 사용한다. 너무 센 불에서 구우면 육질이 푸석해지기 때문에 중불에서 서서히 지진다. 생 돔배기를 소금과 청주에 살짝 재워 놨다 사용하면 냄새도 안 나고 훨씬 부드럽단다. (054)334-4300. 영천시 문외동 38-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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