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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는 남자에 대한 선입견 깨고 싶었다”

2013-07-10

[차한잔] 수필집 ‘봄은 서커스…’ 펴낸 정성화씨

“배 타는 남자에 대한 선입견 깨고 싶었다”
수필가 정성화씨가 최근 펴낸 수필집 ‘봄은 서커스 트럭을 타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수필가 정성화(58)가 수필을 쓰게 된 계기는 좀 희한했다. 1990년대 말쯤 정씨는 전셋집을 얻으러 동네 중개업소를 찾았다. 웬만한 집을 고르자, 중개업자는 “(계약서를 쓰려면) 남편과 같이 오라”고 요구했다. 정씨가 “남편은 배를 타는 선원”이라며 직접 계약하겠다고 하자, 업자는 그때부터 사람을 낮춰 보고 적당히 희롱했다.

“밖에 나가 ‘내 남편이 선원’이라 하면, 선입견을 갖는 사람이 많아요. 선원은 이리저리 나부끼는 인생일테고, 그의 아내 역시 ‘화려한 외출’이 준비된 여자인 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글을 써서 이런 걸 좀 고쳐보자 마음먹었지요. 선원이 얼마나 순수한 사람들이고 또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지 알려주자고.”

이번에 낸 수필집 ‘봄은 서커스 트럭을 타고’(수필세계사)에도 배 타는 사람들 얘기가 군데군데 묻어있다. 몇 개월여의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다다르기 하루 전날 밤, 선원들은 밤을 지새운다고. 가족에게 건넬 돈과 선물 꾸러미를 풀었다 다시 쌌다를 반복하느라 몸을 바닥에 눕힐 시간이 없다고 적었다. 선원들이 배를 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일을 하고 가족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 많아
가족 생각에 밤 지새우고
드라마 보며 훌쩍거리기도 하는
선원들의 성실하고 순수한 모습
글로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막걸리 한 잔, 내복 한 벌처럼
내 글도 누군가를 위로했으면 …”

남편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 여린 남자가 없다. 쉰을 훌쩍 넘긴 요즘도 드라마를 보다 흔한 가족사 얘기에 콧물을 훌쩍이는 사람이다. 명색이 20년 가까이 선장을 해왔다는 사람이 두 손을 좌우로 움직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다.

이번 책에 유독 남편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몇 년 전 남편이 선장에서 도선사로 정착한 때문이다. 정씨는 1년 열두 달 중 두 달 정도만 남편과 살아왔다. 그러다 다른 부부처럼 매일 한이불을 덮고 자고 같은 밥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남편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남편을 다루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어묵조림에 흰설탕을 뿌린다고 남편이 한마디 거들면 그게 밉상스럽고, 마트에 같이 가자며 자신보다 먼저 현관에 서있는 중년 남자가 성가시다고 솔직하게 적었다. 책에서 그는 긴 세월을 기다려 겨우 같이 살게 된 중년의 부부가 ‘가정사 통수권’을 놓고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유머러스하게 에둘러 정리했다.

이전에 내놓은 수필 ‘동생을 업고’ ‘크레파스가 있었다’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수작이다. 그녀를 보면 ‘재능’보다 앞선 것이 ‘심성’이란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수필가가 되려 한 적도, 누구처럼 글을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엄포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필은 아는 사람들이라면 복사해 소장할 정도로 잘 나간다. 첫 수필집은 1천권을 찍고 더 찍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열달 동안의 가정사를 공책에 적어 남편이 돌아오면 보여줬는데, 그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것 같다”며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짧게 소개했다.

정씨는 수필을 쓰며 누구나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수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한 사람에게 따라 주는 막걸리 한잔, 누군가를 걱정하며 준비한 내복 한벌. 내 수필도 꼭 그만큼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기쁨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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