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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권에 실망감 높던
1995년 첫선거 여당 참패
대구시장도 못 건져
그때와 상황 다르지만
야권후보 선전 주목"
우리나라 지방선거는 1995년 6월27일 처음 실시됐다.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이고, 당시 여당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이었다. 그때도 대구·경북은 민자당의 안방이었다. 그러나 첫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은 지역유권자들로부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대구시장 선거에서부터 민자당 조해녕 후보는 참패했다. 무소속 문희갑 후보가 36.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자민련 이의익 후보가 22.1%, 무소속 이해봉 후보가 21.5%로 뒤를 이었다. 조해녕 후보는 16.9%로 4위에 그쳤다. 무소속 안유호 후보(2.9%)가 출마하는 바람에 겨우 꼴찌를 면했다.
경북도지사 선거도 아찔했다. 민자당 공천을 받은 이의근 후보가 37.9%를 받아 당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2위를 차지한 무소속 이판석 후보(34.3%)와의 표차는 겨우 5만표가량이었다. 여기다 자민련 박준홍 후보도 27.7%를 가져갔다. 당초 추진됐던 대로 이판석-박준홍 후보단일화가 이뤄졌다면 경북도지사 선거도 민자당이 졌다.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민자당은 참패했다. 대구지역 8개 기초단체장은 민자당이 단 2곳을 차지했고, 자민련이 1곳, 무소속이 5곳을 점령했다. 경북지역 23개 기초단체장은 민자당이 8곳을 확보하는 데 그친 반면 민주당이 한 곳, 무소속이 14곳에서 당선됐다. 대구시의원과 경북도의원선거에서도 민자당은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민자당에게서 등을 돌린 민심은 이듬해 15대 총선까지 이어졌다. 자민련이 대구에서 13석 중 8석을 가져갔다. 민자당은 단 2석을 건지는 데 그쳤고, 무소속도 3명이나 당선됐다. 경북에서 신한국당은 19석 중 11석을 얻어 체면치레를 했지만, 자민련에 2석, 통합민주당에 1석, 무소속에 5석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김영삼 정권은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출범했지만 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TK 유력인사를 토사구팽(兎死狗烹)했다. 지역 민심이 크게 들끓었다.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잘못 밀었다는 자괴감이 확산돼 “낙동강에 (표를 찍은)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첫 지방선거 이후에는 다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현 집권세력의 판이었다. 그럼에도 20년 가까이 지난 일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선전 여부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특히 대구시장 선거에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는 2년 전 총선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선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 시·군·구 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지역구도 타파 차원에서도 기대를 모았던 정당 공천 폐지가 물 건너가고 있다. 여야의 공통 대선공약이었던 만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영남과 호남에서라도 실험적으로 실시해 보는 방법은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6·4 지방선거를 통해 대구·경북에 뿌리내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이제 겨우 집권 2년 차에 들어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대구·경북 주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 또 당시의 자민련처럼 지역민이 마음을 줄 만한 대안정당도 마땅히 없다. 진보색채가 짙은 안철수 신당은 아직 TK의 표심을 자극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대구시장 선거 등에서 큰 이변이 일어나거나 무소속 바람이 불 여지는 남아 있다. 지역 유권자들도 여당 공천 경쟁을 1차로 관전하고, 여야 후보가 맞붙는 본선을 2차로 관전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을까.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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