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맞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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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구민변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번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밀린 월급 400만원을 못 받았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업주를 상대로 무료소송을 했는데 사장이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 변호사가 그리 할 일이 없냐’고 화를 내더군요. 사장이 끝까지 돈을 안 주고 버티다 집달관이 압류처분 딱지를 붙이려 하자 돈을 줬어요. 그 사건을 해결하고서 이주노동자한테 넥타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구지부(지부장 남호진) 소속 구인호 변호사는 수년 전의 일을 잊지 못한다.
대구민변이 올해 창립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일에는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초청해 경북대에서 ‘인권-공감과 포용의 미덕’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갖고 ‘민변 대구 10년의 길’이란 자료집을 발간했다. 대구사회연구소,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 등 지역의 시민단체 회원이 강연장을 찾아 이날 대구민변창립10주년을 축하했다.
시국·노동사건 등 변론 펼쳐와
외국인 노동자에도 도움 손길
시국선언 등 진보적 활동 탓
보수적 대구에서 오해도 받아
전국서 유일 ‘인권센터’ 운영
회원들 ‘민변회원’ 자긍심 커
대구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 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해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혁신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대구에서 실현하고자 만들었다.
대구민변의 창립선언문에는 ‘일제강점기 상화와 육사의 민족저항정신, 2·28학생의거 정신을 계승해 사회를 혁신하고, 바람직한 민주화와 소외받고 있는 지역민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구민변이 창립하기 전 대구지역에서는 김준곤, 최봉태, 송해익 변호사가 1992년 서울 본부에 가입해 활동을 하다 98년 성상희 변호사가 합류했다. 이어 2004년 5월1일 정재형, 남호진, 김철, 구인호, 손영준, 설창환 변호사 등 16명이 가입함으로써 대구민변이 탄생했다. 당시 법무법인 ‘삼일’과 ‘하나로’ 소속 변호사가 많았으며, 대구민변의 맏형격인 김준곤 변호사(대통령 소속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의 역할이 컸다. 현재는 법무법인 ‘참길’ 소속 변호사가 많다.
대구민변의 초대 지부장은 최봉태, 사무국장은 정재형 변호사가 맡았다. 이후 송해익, 성상희, 정재형, 구인호 변호사 등이 지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회원은 22명이다. 이 가운데 권기혜, 신성욱 변호사가 30대, 김준곤, 최봉태, 송해익 변호사가 50대, 나머지는 40대다. 대구민변 회원은 매달 10만원의 회비를 낸다. 이 가운데 8만원은 지부에서 사용하고 2만원은 서울본부로 보낸다.
지난 10년간 대구민변은 시국 및 노동사건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법률소외계층을 위한 변론을 펼쳐왔다. 대구민변의 대표적인 변론활동으로는 최봉태 변호사가 추진한 일제강점기 일본군강제위안부와 강제노동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승소한 것이 있다. 이 밖에도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사업 등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재심사건(남호진), 긴급조치 9호위반 재심청구소송(정재형), 통일단체대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이승익), 대구 10월항쟁 희생자 손해배상소송(구인호 등) 등 시국사건을 비롯해 성서나들목 정체와 관련된 손해배상소송(박성호), 무상급식조례 수정통과 관련 장애인 농성 건 업무방해 피소사건(박경찬) 등 주민생활과 관련된 소송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안전과 관련해 참여연대와 함께 운행금지가처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남호진 지부장은 “1999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던 학생들을 변론하다 여름휴가도 못 간 적이 있다”며 “서울, 부산, 광주, 대전에 비해 민변 결성은 늦었지만 회원들 모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형 전 지부장은 “변호사 생활 16년, 민변생활 10년인데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건강도 못 챙겼고, 돈도 많이 못 벌었지만 밥은 먹고 살았지 않느냐. 대구지역에서 이름 석 자 더럽히지 않고 살아온 것이 고맙다”고 했다.
구인호 전 지부장은 “민변이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따뜻한 변호사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며 “민변 회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승익 변호사는 “지금까지 변론을 하면서 기소유예도 받아봤고, 집시법과 관련해서 무죄도 받아봤는데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구민변은 국정원 선거개입관련 시국선언, 국가보안법폐지 촉구 선언을 하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구민변 회원은 참여연대 등 대구지역 시민단체의 활동에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의 보수적인 정치성향 탓에 오해도 받았다. 심지어는 민변이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대구민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권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소송구조위원회를 두고 소송구조여부 및 구조유형을 결정한다. 소송구조에는 무료변론과 유료변론 등 5가지 유형이 있다. 회원이 무료변론을 할 경우 대한변협 인권재단 구조금과 자체 회비계좌로 변호사의 보수를 확보한다.
최봉태 전 지부장은 “대구민변은 지난 10년간 대구정신이라고 할 민족, 민주정신을 지역에 부활시키는 데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한다”면서 “대구정신을 계승해 통일을 이루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살아있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드는 데 대구민변이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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