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북조시대까지 중국에서는 주로 궁형(宮刑)을 받은 자를 환관으로 채용했다. 그러다 수나라 때 궁형이 폐지된 이후부터는 자원자 위주로 환관을 선발했다. 궁궐에서 ‘문고리 권력’을 장악한 환관의 위세는 왕후장상 부럽지 않았고, 가족들도 호사영달을 누렸다. 반가(班家)에서조차 아들이 환관 되는 걸 소망할 정도였고, 가난한 집에서는 신분상승의 영예로 받아들였다. 명나라 조정에서 환관 3천명을 공개 모집했던 1621년에는 2만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늠케 한다.
환관의 수명이 긴 것도 눈길가는 대목이다. 왕의 평균 수명이 47세였고 양반이 53세 안팎이던 조선시대 환관의 평균 수명은 70세였다. 1670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환관 기경헌은 101세까지 살면서 현종·숙종·경종·영조 등 4명의 왕을 모셨다. 현대 의학계에서는 거세로 인해 남성 호르몬 분비가 적어진 걸 장수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포악하고 간교한 환관으로는 진(秦)나라 조고를 빼놓을 수 없다. 환관 조고는 태자 부소에게 양위하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해 덜떨어진 호해를 왕위에 앉히고 부소를 죽인 후 국정을 농단한다. 호해 앞에 사슴 한 마리를 데려와 말이라고 우겨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남긴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고의 패악과 폭정으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난 진나라는 통일 15년 만에 멸망한다.
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조정을 장악한 장양 등 10명의 환관을 일컫는다.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영제는 십상시의 농간으로 주색에 빠졌으며, 장성한 후에도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십상시들이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리는 등 전횡을 휘두르면서 황후 오빠인 대장군 하진과 권력 다툼을 벌이게 되고, 결국 장락궁에서 2천명의 환관이 몰살되는 ‘십상시의 난’으로 이어진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문건에는 ‘십상시’ 같은 자극적 용어도 나온다. 십상시로 거론된 인물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의혹의 진위는 가감 없이 밝혀져야 한다.
박규완 객원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자유성] 十常侍](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12/20141203.01031083049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