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목숨 잃은 여대생 사연 듣고 母校 장학기금도 앞당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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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경북지역 첫 대학생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박철상씨가 자신의 기부철학과 향후 사회기여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박철상에게 고맙다는 게 아니라 사회에 고맙다고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4일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박철상씨(30·경북대)는 기부의 공(功)을 사회로 돌렸다. 박씨는 지난 9일 5년간 총 3억6천만원을 기부하기로 하고, 대구의 46호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역에선 첫 대학생이자 30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아이 좋아해 보육원 방문 계기
6년전부터 운용수익 15% 기부
무작정 내는 ‘묻지마기부’보다
선순환 사회 구조 만들길 원해
당초 40∼50대쯤 돼 기부 생각
어려운 학생들 보며 계획 바꿔
“투명하게 쓰일 수 있을까…”
처음엔 기부단체에 거부감도
‘지정기탁 제도’ 알고 동참해
◆보육원 방문 후 기부 시작
박씨도 다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처럼 오래 전부터 기부를 해왔다. ‘한국의 청년 버핏(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으로도 불리는 그는 6년 전부터 과외로 번 돈, 장학금 등 개인자금을 운용해 생긴 수익 15%를 기부하고 있다.
기부를 시작하게 된 데는 직접 복지시설을 방문하면서 본 것들이 영향을 미쳤다. 박씨는 전역하고 복학한 후에 보육원 몇 군데를 주말마다 찾아갔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는 터라 목적의식보다는 같이 놀아준다는 생각으로 보육원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칠곡 등 주로 외곽 지역에 있는 시설을 찾아갔는데, 이때 도심에 있는 시설에 비해 지원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부터 지원에서 소외된 복지시설에 50만원 정도를 전달하면서 기부를 시작했다. 박씨가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일회성 기부 2억원, 정기기부 7억~8억원 등 10억원 내외다.
무작정 거액의 돈을 기탁하는‘묻지마 기부’는 원치 않았던 박씨는 자신이 낸 기부금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가 학생이 지원대상이 되는 기부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지난해 조성한 경북여고, 대구서부고의 장학기금을 통해 100명의 학생에게 1억여원을 지원했다. 지난 2월 박씨는 자신이 재학중인 경북대에 장학기금도 만들었다. 이 기금에는 매년 1억2천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박씨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고등학교 시절 만들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모교에 기금을 만들고 나서도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장학금을 받을 학생을 선발하는 심사과정에도 본인이 직접 참여한다. 경제적 형편, 학생의 성실성, 인성 등을 심사 기준으로 잡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지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가 이렇게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모님 영향도 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시절에도 부모님이 서로 아끼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고.
박씨는 “부모님은 어려운 이웃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며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꼭 대신 들어줬다”고 말했다.
◆“나를 보지 말고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라”
박씨는 어린 나이에 대학생의 신분으로 수억원을 기부할 생각은 원래 없었다. 그의 당초 계획은 어느 정도 성장한 40~50대쯤에 기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년 전 기숙사 룸메이트의 친구인 한 경북대 여대생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의 계획은 바뀌었다. 이 학생은 학비 때문에 휴학을 하고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어렵게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
박씨는 “이 학생의 사연을 들으며 열심히 살아온 학생이었는데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워 보름 정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며 “장학기금 조성 등 예정했던 기부 계획을 앞당기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도 단체를 통한 기부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기부금이 투명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북대 재학 중 기금 조성을 하면서 만났던 함인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전 경북대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지정기탁’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다. 지정기탁은 기부자가 원하는 대로 기부금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졸업 후 내년에 유학을 갈 계획을 잡고 있다. 경영학, 철학, 경제학 등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학문을 10년 이상 공부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박씨는 “기부를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니까 정치를 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조용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지낼 것”이라며 “정책연구소 설립, 대학교수로서 후학 양성 등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기부에 자신의 이름을 되도록 앞세우지 않으려 한다. 학생들이 긍정적인 사고로 자라나는 데 자신의 기부금이 쓰였으면 하는 의미가 퇴색될까 싶어서다. 자신이 조성한 장학기금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없다. 경북여고, 대구서부고의 장학기금의 명칭은 꿈지기 장학기금, 누리나래 장학기금이다. 모교 장학기금의 명칭도 복현 장학기금으로, 엎드릴 복(伏)에 어질 현(賢)을 쓴다.
그는 “인터뷰 때도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기부에 대한 사연 위주로 써달라고 부탁한다”며 “기부를 하는 나를 보기보다는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주위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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