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904.010370808560001

영남일보TV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고등학교 때 청계천서 산 두장짜리 블루스 음반이 내 인생을 바꿨다”

2015-09-04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고등학교 때 청계천서 산 두장짜리 블루스 음반이 내 인생을 바꿨다”
김목경의 기타 주법은 에릭 클랩튼처럼 무척 느리다. 하지만 아주 깊은 ‘낙폭’을 전해준다. 그게 블루스의 매력. 때로는 블루스의 왕 비비 킹처럼 한 음에 자신의 삶을 모두 올려놓는다. 비균형적이면서도 고도의 심플함과 몽환적 기운을 가진 블루스를 위해 그는 한순간도 기타를 놓을 수 없다.

지난 5월14일 ‘블루스의 왕’으로 불렸던 비비킹이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대한민국 블루스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목경(57)도 애도했다. 슬프면서도 감미롭고 그러면서도 세련된 그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으면 요즘의 테크니컬하고 스피디하고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핑거스타일 계열의 연주가 얼마나 밋밋하고 맛이 없는지를 절감한다. 블루스에서는 너무 현란한 스킬은 오히려 단점이 된다. 음과 음 사이에 한과 정서, 철학까지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속주보다는 조금은 게으른 듯한, 조금은 에릭 클랩튼 같은 연주가 훨씬 좋지 않을까.

그는 2002년 미국 멤피스에서 날아온 한 통의 e메일을 받는다. 세계 3대 음악 페스티벌 중의 하나인 ‘Beale Street Music Festival’에 블루스 뮤지션으로 참여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그때까지의 모든 서러움을 보상받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그 페스티벌의 참여 뮤지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비킹, 조 카커, 올맨 브러더스, 지지 톱, 셰릴 크로, 밥 딜런…. 현지 언론의 반응도 좋았다. 한국에서 받지 못한 대접을 미국에서 받게 된다. 그후로 일본,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마카오 등지로부터 블루스 페스티벌 초청이 연이어진다. 그 때문인지 2013년 대한민국 대중음악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미국 펜더 기타회사로부터 헌정 기타까지 받는다. 지난 8월 대구에서 가장 더웠던 그날 제1회 앞산 전망대 근처 한 휴게소 앞에서 번개 콘서트를 가졌다. 대구 MBC FM 인기 라디오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DJ였던 유진혁씨가 기획한 행사다. 그는 음악에만 올인하는 뮤지션 상당수가 생계에 위협을 느껴야 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평생 음악만 하고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여건 속에서 블루스 하나로 버티는 걸 그는 보람이 아니라 ‘사명(使命)’으로 여긴다. 그는 현재까지 정규 솔로앨범 6장과 라이브 앨범 2장을 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고등학교 때 청계천서 산 두장짜리 블루스 음반이 내 인생을 바꿨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고등학교 때 청계천서 산 두장짜리 블루스 음반이 내 인생을 바꿨다”

  

▲블루스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포크음악을 흉내냈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록뮤직을 접했습니다. 비틀스,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등 그들의 애드리브를 카피하려 노력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청계천에서 구입한 두 장짜리 음반이 나의 인생을 바꿉니다. 그게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입니다. 그 음반을 트는 순간 ‘기타의 모든 비밀이 여기 있었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내가 그렇게 어려워했던 백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가 그날 청계천에서 사온 음반의 흑인 블루스 연주자들을 그대로 카피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블루스와 솔(soul), 재즈, 팝, 포크와의 차이나 개념이 참 모호한 것 같아요.

“재즈, 포크, 솔, 로큰롤 등에 영향을 미친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에 의해 태어난 아주 처절한 음악입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향을 그리며 토해낸 읊조림 같은 거죠. 백인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음계였죠. 바로 ‘블루노트(장음계에서 3음과 7음을 반음씩 낮춰 연주하는 것)’였습니다. 백인들은 흑인의 블루스를 자신들의 컨트리·포크 음악에 접목을 시키고 ‘로큰롤’이라 칭하게 됩니다. 흑인 뮤지션들은 ‘백인이 블루스를 훔쳐서 거대한 자본과 마케팅을 통해 큰돈을 챙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흑인 뮤지션들이 유명해지고 지금까지 블루스라는 장르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고 무대에 그들을 초대해 같이 연주하지요.”

 

기타는 또 하나의 나
관심 안 가지면 지판 휘어지죠
항상 대화하고 연주해야

김광석은 순수했던 사람
유명과 무명을 차별 안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88년 영국 런던서 만든 곡

대구포크페스티벌 정말 고무적
야외공연장까지 갖춰 금상첨화



▲블루스와 재즈의 관계도 궁금하네요.

“특히 미국에는 재즈라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클래식 음악이 블루스와 접목되면서 블루스보다 더 복잡하고 음악적으로 발전된 장르를 만들게 되지요. 재즈가 탄생한 겁니다. 결국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대중음악은 흑인과 백인의 음악적 특징을 잘 섞어놓은 ‘믹스 커피’ 같은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김목경의 영국 유학을 궁금해 하더군요.

“1984년 4월 영국에 3개월만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부모님을 졸라 최소한의 경비만 가지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예정된 3개월이 지나고 돌아오는 비행기표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난리가 났지요. 돈을 보내주시지 않았고 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네 가지 일을 했어요. 오전 6시에 기상해서 히드로공항에 나가 사람들을 리무진 버스에 태워 호텔까지 안내하는 일, 오전 11시부터 식당에서 접시닦이, 오후 4시부터 페인트칠 하기,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클럽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어요. 이후 귀국 때까지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했지요. 참 불효자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모아둔 돈으로 2년제 예술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졸업하는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 언어가 통할 때 현지 블루스 밴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블루스는 물론 기타까지 많은 걸 배웠고 그들과 함께 내 첫 앨범을 녹음해 90년 한국에 마스터 테이프를 가지고 귀국합니다.



▲개인적으로 기타란 어떤 악기 같습니까.

“저한테 기타라는 악기는 또 하나의 저입니다. 기타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말로는 못하는 이야기도 기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피곤하고 지칠 때, 슬프고 기쁠 때 기타는 나의 그 상태를 그대로 여러 개의 음으로 표현해 냅니다. 기타는 여자와 비슷합니다. 관심을 안 가지면 지판이 휘어지지요. 항상 대화하고 연주해야 합니다. 기타는 ‘우는 악기’입니다. 어떤 울음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지요.. 비비킹은 ‘원 노트 맨(One note man)’이었습니다. 한 음으로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한 음에 모든 감정을 실어 연주하면 그 울음 소리는 실제 울음 소리와 같은 감동을 전달한다는 겁니다. 속주 기타도 나름 매력이 있지만 그만큼 얘기를 많이 해서, 즉 음을 많이 쳐서 사람을 설득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비비킹같이 적은 음으로 임팩트 있게, 또는 강렬하게 연주하는 쪽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블루스 기타의 매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광석, 김현식, 사랑과 평화, 들국화 전인권, 유제하 등 국내 유명 뮤지션과의 인연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김광석은 내가 영국에서 막 돌아온 90년도 초에 만났지요. 포항으로 기억하는데 공개방송을 같이 했던 게 첫 만남이었죠. 그 후 우리집에 자주 놀러와서 음악 얘기도 하고 술도 먹고 했는데, 참 순수했어요. 광석이는 포크 가수였지만 블루스 기타에 관심이 많았고 같이 잼도 많이 했습니다. 내 첫 앨범에 수록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느날 전화로 ‘형,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다시부르기 앨범에 넣고 싶어요’라고 물어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근데 형, 곡비는 얼마 줘야해?’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야, 저번에 내가 너한테 빌린 돈 있잖아. 그걸루 퉁치자’며 합의 아닌 합의를 보았지요. 그 곡을 녹음하는 날 압구정동에 있던 녹음실에 가보니 족발과 소주가 놓인 채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중간에 울컥하는 부분에 소주 한 잔하고 다시 부르는 광석이를 보고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만난 많은 가수 중에 유명과 무명의 경계선이 없는 순수한 친구였습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놈이었지요.”



▲창법이 참 블루지한데 누구에게 배웠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AFKN의 컨트리 음악을 듣게 됐어요. 매일 그 방송을 듣는 게 취미였죠. 몇 년이 흐른 후 텔레비전에 나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을 보면서 이미 내가 아는 노래라는 걸 알았죠. 그때의 영향인 것 같아요. 사실 난 별로 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좀더 거칠었으면 좋겠어요. 연주할 때 기타 톤에서 나오는 묵직함에 목소리도 같은 톤이 나오길 바라요.”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88년 영국 런던에서 만든 곡입니다. 88년은 영국 생활 5년차였고 향수병에 걸려있었어요. 내가 살던 방이 2층이었고 건너편 집 뜰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집 노부부의 쓸쓸한 일상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그때 제 나이 20대 후반이었고 ‘60대’를 노부부라 칭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60대는 노부부가 아니라 장년이겠죠. 이 곡을 녹음할 때 영국 뮤지션이 세션으로 참여했는데 총 8곡 중 이 곡만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훗날 김광석, 서유석, 홍민, 서수남, 송대관, 아이유, 박완규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더군요.”



▲대구 포크페스티벌이 올해 론칭됐는데 해주고 싶은 말은.

“대구포크 페스티벌은 정말 고무적인 일입니다. 대구에 그렇게 좋은 야외공연장이 있으니 금상첨화죠. 그런 기회를 통해 서울은 물론 지역의 숨은 실력파 뮤지션이 공감대를 형성하면 더 좋겠죠. 지난달 영주 무섬마을 강변에서 열린 2015 블루스뮤직 페스티벌은 제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영주에서 웬 블루스’라며 의아해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많은 가능성을 남긴 행사였어요. 저도 그 행사에 좀 간여하고 있는데 2~3년 뒤 외국 유명 블루스 연주자도 초청될 겁니다.”



▲공연없을 땐 뭘 하죠.

“별다른 취미는 없습니다. 시간이 나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예전 김훈과 트리퍼스 밴드 기타리스트 이경천 형이 운영하는 라이브 클럽 ‘리더스’에 가서 블루스 연주를 하는 게 취미라면 취미입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술 한잔 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곳이지요. 최이철(‘사랑과 평화’의 리드 기타리스트), 조경수(가수), 김정수(가수), 신대철(시나위 리더), 김도균(기타리스트), 이중산(블루스 기타리스트) 등 선후배 뮤지션이 모여 잼을 즐기는 놀이터 같은 장소입니다. 운동 선수가 경기가 없을 때 기본 체력 훈련을 하듯이 음악하는 사람도 항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 분위기 안에 있어야 합니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