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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3] 금(金) : ‘황금 빛에 취하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2015-10-06

현진건(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의 감탄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보물’에 넋 잃다

[내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3] 금(金) : ‘황금 빛에 취하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에서는 금관총 금관에서부터 광복 이후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에서 발굴된 금제 관식, 은제 관모 등 화려하고 다양한 유물 6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anam.com

‘그러나 한번 신관에 발을 들여놓자 나는 황홀하게 넋을 잃었다. 첫째로 찬란한 황금관이 햇발과 같이 번쩍인다. 전체가 순금으로 된 것만 해도 끔찍한 일이어든, 그 치장과 잔손질은 또 얼마나 정교하고 혼란하냐.’ 1929년 여름, 현진건은 경주박물관에서 신라의 금관을 보고 이렇게 썼다. 1921년에 발굴된 금관총의 금관이었을 것이다. 이후 신라의 금관은 총 5개가 더 발견되었고 그와 함께 무수한 황금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깜깜한 흙더미 속에 죽은자와 함께 묻혀있던 신라의 황금 문화는 지상의 빛 속에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내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3] 금(金) : ‘황금 빛에 취하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1921년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관(5세기, 높이 27.7㎝).

신라의 금관은 금관총의 것을 시작으로 금령총, 서봉총, 황남대총, 천마총, 그리고 도굴되었던 것을 회수한 교동금관까지 총 6점이다. 전 세계에서 현재까지 확인되는 고대 금관은 모두 10여 개, 그중 절반 이상이 신라의 것인 셈이다.


경주박물관 70주년 겸 실크로드 기획展
금관총 등서 발굴된 유물 600여점 선봬
불교문화 융성 보여주는 불상·공예품도

왕릉급의 대형무덤서 출토된 유리제품
귀족만 소유한 것으로 대외교류의 상징
연녹색 띠는 봉수형의 유리병 눈길끌어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신라에 금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 무렵 신라는 소국시대의 사로국에서 국가시대로 변화하면서 김씨(金氏)가 왕위를 세습하고, 마립간이라는 왕호(王號)를 사용하던 시기였다. 신라의 황금 유물들은 그 시대와 그들의 삶을 소환해 보여준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황금은 마립간 시대의 절대적 권위와 초월적 왕권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5세기부터 6세기 전반까지 약 150년간,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실제 삼국유사 권1 진한조에는 ‘신라 전성기 경주에 17만8936호, 1360방, 55리와 35개의 금입택(金入宅: 고위층 주택, 실제는 39개)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문자 그대로 경주에는 ‘금으로 도배한 집’ 혹은 ‘금이 들어가는 집’이 39곳이나 됐다는 이야기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지금 마립간 시대의 찬란했던 황금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개관 70주년 기념전이자, 40여개 나라에서 1만여명이 참가하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실크로드 경주 2015’의 테마행사로 기획된 전시회다. 이번 전시는 금관총 금관에서부터 광복 이후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에서 발굴된 금제

[내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3] 금(金) : ‘황금 빛에 취하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1975년 황남대총에서 발굴한 봉수형 유리병(5세기, 높이 24.7㎝).

관식, 은제 관모 등 화려하고 다양한 유물 6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경주에서 출토되었지만 멀리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귀중한 유물들도 잠시나마 고향 경주로 돌아와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치 고대왕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든다.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황금의 유물들이 빛나고 있다. 각종 드리개로 매단 금장식의 허리띠, 수천 개의 유리구슬과 금판을 엮어 만든 가슴걸이, 금 알갱이와 유리가 끼워진 어여쁜 반지들, 간드러진 방울이 달린 굵고 가는 귀걸이들, 세련된 감각의 황금목걸이, 세밀한 조각 같은 금동신발 등 현진건이 ‘그야말로 인공을 뛰어넘어 신공이요’ ‘하늘에서 이 세상에 떨어진 보물’이라고 표현한 신라인의 놀라운 공예기술과 숨 막히는 미감의 정수들이 펼쳐져 있다.

6세기 중반, 금관은 홀연히 사라졌다. 지증 마립간에서 법흥왕으로 넘어가던 시기, 통치 이념의 기반으로서 불교가 공인되고 법과 제도를 구축했던 때다. 금관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법이 우뚝 섰고, 황금의 화려한 장식품은 점차 사라져 사찰의 불상이나 사리공양품 등 불교공예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마립간 시대 금관의 소멸 후 신라 불교문화의 융성을 보여주는 불상과 불교공예품도 함께 자리한다. 불교 공인 후 세워진 신라의 첫 국가 사찰인 황룡사터의 각종 공예품과 경주 구황동 석탑의 국보 제79호 금제 아미타불좌상,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동탑서(東塔西)’가 새겨진 금동 장식, 경주경찰서 소장의 부처가 새겨진 탑신석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특히 국보 제83호인 금동 반가사유상이 경주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는데, 7월21일부터 8월2일까지의 짧은 외유를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갔다.

#2.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경주의 고분들에서 발견된 유리제품들이다. 현대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신라의 유리그릇들은 왕릉 급의 대형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었으며 금관이나 금제 허리띠처럼 특정 신분만이 소유했던 것이다. 특히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수형의 유리병은 신비로운 연녹색으로 눈길을 잡는다. 각종 역사서에 자주 등장해 사진이나 글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기 쉽지 않은 문화재다. 손잡이에 감긴 금실은 수리의 흔적으로 추정되는데, 이 자그마한 유리병이 신라 귀족들에게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1천500년 전 신라에는 유리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이 제품들은 먼 서역 땅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앙아시아 혹은 흑해연안, 또는 이란지역 가운데 한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보검과 신라문화의 서역적 요소를 말해주는 식리총 식리, 경주고등학교 소장의 무인석상 등 신라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외에도 월지의 용얼굴무늬 기와와 보상화무늬 전, 경주박물관 남쪽 부지에서 나온 ‘동궁아(東宮衙)’가 새겨진 단지 등 신라 왕경의 다양한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신라를 소재로 한 이응노, 박대성, 배병우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고대 일본 사람들은 신라를 ‘눈부신 금은(金銀)의 나라’라고 했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은 눈부신 황금의 나라 신라, 국제적인 신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3.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실크로드 경주 2015

특별전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실크로드 경주 2015’이다. 실크로드는 동서양을 잇는 길이며 인류 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였다. 8세기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과 함께 세계 4대 도시였던 천년 고도 신라는 바로 실크로드의 동단기점이었다. 동서양의 진귀한 특산물과 문화가 그 길을 통해 전해졌고, 고승 혜초도 대학자 최치원도 실크로드를 따라 고행의 여정을 떠났다. 지난 8월21일 개막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실크로드 경주 2015’는 실크로드를 주제로 열린 첫 문화축전이다.

이번 엑스포에는 실크로드 선상 47개국이 참여했다. 행사의 꽃은 ‘그랜드 바자르’. 중국,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 터키 등 15개국의 대표 음식과 공연, 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장이다. 그랜드 바자르 중앙의 야외 공연장에서는 하루 종일 세계 각국의 전통 공연이 이어진다. 경주엑스포 공원 곳곳에는 사마르칸트, 이스탄불,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상징하는 문화와 도시가 트릭아트로 구현되어 있다.

상시 운영되는 프로그램 중 석굴암 가상체험과 페르시아 서사시를 재구성한 해양 액션 모험극 ‘바실라’, 리듬체조와 기계체조, 태권도 등이 어우러진 박진감 넘치는 공연 ‘플라잉 화랑 원정대’ 등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경주타워에 전시되어 있는 실크로드 선상 국가들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로만, 사산, 이슬람의 글라스 100여점과 유적 사진도 중요한 볼거리다. ‘실크로드 경주 2015’는 오는 18일까지다.

#4. 2015 금관총 발굴 출토품 공개

국립 경주박물관은 9월25일부터 11월29일까지 금관총에서 발굴된 출토품도 특별 전시한다. 국립 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금관총을 발굴했다. 1921년 금관이 처음 발견된 이후 94년 만의 정식 발굴이었다. 금관총의 발굴 성과를 신속히 일반에 공개하기 위하여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출토품 12건을 선보인다. ‘이사지왕도(爾斯智王刀)’라는 글자가 새겨진 칼집 마구리와 가는고리 금 귀걸이, 굵은고리 금 귀걸이, 은제허리띠 장식, 많은 양의 유리구슬, 눈금이 있거나 달개가 달린 금실, 유리 곱은옥, 유리그릇 조각, 다양한 토기 조각 등이 전시된다.

글=류혜숙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참고=국립경주박물관 자료, 황금의 나라 신라(이한상, 김영사, 2004), 고대관의 분류체계에 대한 고찰(함순섭, 고대연구 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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