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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그럭저럭 나았소
올해도 김장 몇 포기 담갔소
사랑이여
당신이 사준 고동색 파카는
시골집 수도펌프가 입게 되었소
입동이라는 절기가 주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막상 겨울이 닥치면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만 심적으로 추위를 가장 많이 느끼는 때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 즈음이 아닌가 싶다. 추위를 타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이번 겨울은 어떻게 잘 넘길 수 있을까. 누군가는 겨울 스포츠를 시작해 보라고 하지만 사실 겨울 스포츠는 쉽게 즐기기에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측면이 많다.
심호택의 ‘겨울 편지’를 읽다보면 초겨울의 삭막하고 황량한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 곳곳에 은근하게 배어 있는 추위가 금세 살갗으로 느껴진다. ‘아픈 건 그럭저럭 나았소’ 안부를 전하는 첫 문장에서 벌써 마음이 짠하다. ‘그럭저럭’에 담긴 메시지는 뭔가 복잡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직 덜 나은 몸으로 김장을 하고 겨울 채비를 한 사람. 그의 사랑이 사준 고동색 파카는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낡아버렸다. 그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둘 사이의 모호하고도 공허한 세월은 또 얼마라는 말인가.
시인의 편지는 짧다. 긴 말을 늘어놓지 않았지만 배추 속에 버무려 넣는 양념처럼 사람살이의 깊이와 진한 정이 묻어난다. 그리고 무한한 시간 속에 놓여 있는 덧없는 인간의 삶과 그것을 구성하는 누추한 공간이 다가온다. 시인은 이러한 성찰을 통해 사람과 삶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보여준다.
말은 아낄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함축하기 마련이다. 아낀 말에서 오히려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시란 압축으로 더 큰 의미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겨울 편지를 띄워야겠다.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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