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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망치소리 잦아든 공구골목, 카페·전시·체험공간으로 되살아나다

2016-01-05

[북성로 움트다 <상>]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

망치소리 잦아든 공구골목, 카페·전시·체험공간으로 되살아나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은 북성로 공구박물관. 작은 사진은 북성로 공구박물관의 리노베이션 전 모습. 1930년대 미곡창고로 쓰이던 일본식 목조건물에 시멘트를 덧칠해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시간과공간연구소 제공>
망치소리 잦아든 공구골목, 카페·전시·체험공간으로 되살아나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 형태를 지닌 철물점 삼덕상회의 리노베이션 후 모습. 건물 왼쪽이 ‘카페 삼덕상회’, 오른쪽이 건축사무소인 ‘아키텍톤’이다. 작은 사진은 리노베이션 전 모습. <시간과공간연구소 제공>


한동안 시간이 멈춘 듯했던 북성로에 생기(生氣)가 감돈다. 망치 소리가 줄어든 공간에 문화와 예술, 사회적 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골목이 다시 북적인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북성로 곳곳에 숨어있는 근대건축물의 리노베이션(기존의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을 통한 도심 재생이다. 낡고 버려져 흉물스럽던 근대건축물에 리노베이션이라는 새 숨을 불어넣자 카페와 전시공간, 문화공간, 사회적기업 등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자연스레 거리에 사람이 몰려든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움직임이 관 주도가 아닌 철저히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사>시간과공간연구소’와 ‘북성로허브’(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단)가 있다. 북성로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공간연구소는 리노베이션을 통한 ‘공간’의 재발견을, 북성로허브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을 통해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쇠락·방치된‘대구 산업화 1번지’
근·현대와 문화 어우러지게 재생
시간과공간硏·북성로허브 주도
구한말 이후 건물 숨은 가치 발굴


30년대 日式 삼덕상회를 카페로
2층 미곡창고는 공구박물관으로
공간 재창조 후 사회적기업 육성
4년간 45팀 창업…사람 모여들어

◆일제 강점기 땐 조선의 ‘긴자’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0년대 초반 대구의 상권은 대구읍성의 성벽을 경계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 외곽에 살며 성 밖 상권을 장악한 일본인들은 성 안의 상권까지 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벽에 가로막혀 성 안으로 쉽게 진출하지 못했다. 이에 일본인들은 성벽 때문에 대구가 근대도시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끊임없이 성벽 철거를 요구해 왔다.

1906년 대구 군수 겸 경북도관찰사 서리로 부임한 친일파 박중양은 일본인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정의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인부들을 동원해 성벽을 허물었다. 이렇게 무너진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이 있던 자리에 생겨난 거리가 북성로다. 나머지 성벽이 있던 자리에도 동성로와 서성로, 남성로가 생겨났다.

북성로는 경부선 대구역과 가까워 자연스럽게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거리는 대부분 포목점과 양복점, 모자점, 신발점, 시계점, 장신구점, 철물점, 곡물점 등 일본인의 상점으로 채워졌다. 대구 최초의 공중목욕탕인 조일탕이 들어서기도 했다.

특히 지금의 북성로 대우주차장 자리에 있던 미나카이백화점은 5층 규모로 당시 대구의 최고층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까지 있어 멀리서 구경을 온 사람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북성로는 일본인들에 의해 대구 최대 번화가로 발달했고, 조선의 ‘긴자(銀座)’라고까지 불렸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북성로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6·25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와 공구, 철물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늘면서 자연스레 공구골목을 형성했다. 한때는 대구 산업화의 1번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고 2000년대 초반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로 상당수 업체가 빠져나가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근대건축물들 새롭게 탈바꿈

북성로에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광복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근대건축물이 지금도 상당수 남아 있다. 지금껏 허물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첫째는 한동안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버려진 채로 방치됐던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식으로 지어진 건물의 공간 활용도가 높아 상인들이 그대로 사용해 온 것이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북성로에 최근 변화의 싹이 트고 있다. 곳곳에 버려져 있던 근대건축물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리노베이션의 기획과 설계·시공은 모두 시간과공간연구소가 도맡아 하고, 중구청이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1호는 현재 카페와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 삼덕상회’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 형태를 지닌 철물점 삼덕상회는 2009년부터 휴업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했고,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2011년 시간과공간연구소가 이 건물을 복원하면서 ‘카페 삼덕상회’로 재탄생하게 됐다.

‘카페 삼덕상회’의 뒤를 이은 것이 ‘북성로 공구박물관’이다. 이곳은 1930년대 지어져 미곡창고로 쓰이던 2층 규모의 일본식 건물을 활용해 조성한 공간이다. 1층은 공구 기술자의 작업공간을 재현한 ‘공구상의 방’과 각종 체험공간, 2층은 다다미방의 원형을 살려 세미나와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한옥 게스트하우스 ‘판’과 복합 문화공간 ‘믹스카페 북성로’, 일본군 강제 위안부 역사관 ‘희움’ 등이 들어서면서 북성로가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간과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는 “리노베이션에 중심이 되는 키워드는 공간의 재발견”이라며 “북성로 일대의 일상적인 공간과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공간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숨겨진 가치를 발굴해 재탄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역사가 살아있는 공간

시간과공간연구소가 북성로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하드웨어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북성로허브는 ‘사회적경제’라는 모델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소프트웨어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즈니스 활동이다.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영업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사회적기업과 북성로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북성로 근대건축물의 리노베이션은 단순히 건물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되 현재와 미래에도 활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역사적 연속성’의 개념이다. 이 살아있는 공간을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에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북성로허브 전충훈 사무국장은 “근대건축물이 그릇이라면 ‘사회적경제’는 이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어떠한 물건 중 하나”라며 “좋은 물건을 담을수록 그릇의 가치가 더욱 빛이 난다.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과 사회적경제가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성로허브도 근대건축물 중 하나인 이기붕 부통령-박 마리아 부부 옛집에 둥지를 틀고 있다.

북성로허브는 2011년부터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북성로 허브의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성적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지난 4년간 총 81개팀을 육성해 현재 45개 팀이 창업에 성공, 북성로를 비롯한 대구 일대에서 사회적기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충훈 사무국장은 “북성로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유라는 개념을 토대로 근대문화 유산과 비즈니스를 연결해 시간과 공간이 있는 곳에 사람도 흐르는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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