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락의 변천사
대구미술관 행정지원과 직원들이 싸온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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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으로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직원들 간의 유대관계도 돈독히 다지고 있는 대구미술관 행정지원과 직원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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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미술관 행정지원과 직원들이 싸온 도시락. |
2월27일 대구미술관 행정지원과 사무실. 낮 12시가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사무실 한편에 있는 큰 탁자로 모인다. 그들의 손에는 작은 가방이 쥐어져있다. 도시락가방이다.
이날 점심식사에 모인 사람은 모두 7명. 6명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고 1명은 미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샌드위치와 과일을 가져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 2~3분 사이 근사한 점심밥상이 차려졌다. 6명이 도시락을 준비해왔는데 반찬은 10여가지. 어느 하나 같은 반찬이 없다. 샌드위치를 준비해온 문현주 팀장(38)이 빵을 먹으려 하자 옆에 앉아있던 다른 직원들이 밥을 같이 나눠 먹자며 제안을 한다. 문 팀장이 몇번 거절을 하더니 “그러면 빵은 디저트로 같이 나눠 먹자”며 밥숟가락을 든다.
6∼7명이 반찬 한두 가지만 싸와도 10여가지 훌쩍
식당 오가는 시간 줄고 식비 절약…휴식시간은 덤
남은 시간 동료들과 커피 타임·산책·운동까지 즐겨
업무시간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고민 나누기도
“이렇게 밥을 나눠 먹으면서 더 정이 나는 것 같아요. 밥을 먹은 후에는 커피타임을 가지거나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업무시간에 미처 나누지 못했던 개인적인 이야기, 고민 등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도시락으로 밥을 먹으면 휴식시간이 많아 탁구나 배드민턴을 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미술관의 점심시간은 낮 12시~1시. 주변에 식당이 별로 없어서 차로 이동해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외부에서 점심을 먹으면 식사시간이 빠듯하다. 또 매일 사먹어야 되다보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물리기 십상이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은 매일 다른 반찬이니 쉽게 질리지가 않는다. 식당음식에 비해 속이 편하고 과식하는 경우도 적어서 건강과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것이 직원들의 공통된 말이다. 또 10~20분 밥을 먹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티타임 등 휴식시간으로 쓸 수 있어 유용하다.
문 팀장은 “보통 6~7명이 점심을 같이 먹는다. 한사람이 1~2개 반찬만 싸와도 10가지가 넘는다. 간혹 같은 반찬이 있지만 집집마다 음식맛이 다르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요리법을 전해듣는 등 반찬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식사시간에 유일한 남성직원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4월부터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한 이범희 주임(31)이다. 이 주임은 “처음에는 외부식당에서 사먹었는데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더이상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한 뒤, “도시락 맛도 좋지만 식사 후 남는 시간에 산책이나 운동을 할 수 있어 더 좋다”고 했다.
이 주임은 아내가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지만 아침에 시간 여유가 되면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서 장만해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날 도시락의 반찬은 오징어볶음, 계란말이, 고사리볶음이었는데 오징어볶음은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수시로 반찬을 만듭니다. 도시락을 싸오면서 이런저런 요리를 더 하게 돼 요리실력도 느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직원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마파두부, 돈까스 등 요리같은 반찬을 해와요.” “도시락 싸오고 반찬까지 하는 남자, 최고의 신랑감이지요.”
행정지원과 도시락조에서 가장 반찬을 잘 싸오는 이가 궁금해졌다. 이구동성으로 이옥렬 주임(43)을 꼽았다. 이 주임은 “어머니가 애를 봐주시는데 애 먹는 음식을 반찬으로 싸주신다. 맵지 않아서 어른들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며 겸손해한다.
그날 싸온 반찬은 무려 6가지. 갖가지 채소와 과일에 메추리알까지 넣은 샐러드를 비롯해 오징어튀김, 새우튀김, 애호박볶음, 멸치볶음, 오이소고기볶음. 육류·어류·채소를 골고루 사용해 만든 갖가지 요리를 각기 다른 통에다 담아서 도시락을 싸준 어머니의 정성이 한눈에 느껴졌다.
“오징어튀김과 새우튀김은 어제 저녁에 만들었어요. 바로 먹었을 때가 더 맛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는 이 주임은 “도시락 반찬은 바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서 맛이 좀 떨어지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식당음식보다는 맛이 좋다. 식당보다 훨씬 다양한 반찬으로 풍성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게 도시락의 장점”이라고 도시락예찬론을 펼쳤다.
현재 행정지원과 외에 학예실, 시설팀 등에서도 도시락을 싸오고 있는데 행정지원과 도시락조가 인원이 가장 많다고 한다.
문 팀장은 “업무팀별로 도시락을 먹는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배달도시락을 시켜 먹기도 하고 반찬은 집에서 가져오고 밥은 직접 짓기도 한다”며 “도시락을 먹는 직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도시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직장에서는 물론 집에서 도시락을 먹는 이들도 있다. 매일 사먹는 밥값이 만만찮은데 이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식당에 찾아가고 주문 후 대기하는 등의 시간도 아낄 수 있다. 또 1~2인 가구수가 늘어나면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배달도시락, 편의점도시락 등 시판되는 도시락이 다양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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