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
갈대꽃이 피었다. 가을 햇빛은 갈대꽃을 더욱 찬연하게 연출한다. 갈대꽃은 9월 중에 개화해서 현재까지 같은 모습을 보이며, 바람에 나부끼어 군무를 시연해준다. 갈대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신의, 친절, 지혜’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서양에서 온 의미일 것이다. 갈대는 한자로 ‘위(葦)’자나 ‘노(蘆)’자로 표기한다. 조상들은 갈대 그림을 자주 그렸다. 어김 없이 기러기가 갈대 숲에 있다. 기러기는 ‘안(雁)’자로 표기한다. 한 쌍의 아름다운 기러기가 갈대 숲에 있는 그림이니 들여다보면 마음이 무척 편해진다. 음을 합쳐보면 ‘위안’이나 ‘노안’이 된다. 그 그림은 그래서 위안이 되고 노년을 편하게 보내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허주 이징의 ‘노안도’ 그림들이 기가 막히다.
우리나라에서 갈대가 부정적으로 쓰인 것은 20세기부터라고 짐작된다. 흔들리는 마음이나 변절, 배신으로 인한 상처를 갈대에 빗대어 원망하곤 했다. 그래서 요새 사람들은 갈대를 보면 위로해주고 편안했던 마음보다 흔들리는 심상을 훨씬 크게 받는 것 같다. 갈대들이 흔들리고 방향을 바꾸어 눕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런 것만 같아서 아찔해진다. 행여나 선배들에게 불경하지는 않았는지, 아내 모르게 타인에 시선을 두지는 않았는지, 음식 맛을 탓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갈대도 뿌리는 있겠지’하고 안도하기도 한다. 누울지언정 뿌리가 있기에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나는 나약해지고 울적할 때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력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단언컨대, 전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들이다.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 바로 그분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찬 그분들의 삶에서 우리는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분들 중에서도 나는 심산 선생님을 특별히 사랑한다.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문제 의식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대답을 찾으셨다. 그리고 그 대답을 평생 실천하셨다. “나라가 곧 망하겠다. 지금 문을 닫고 글만 읽을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고선 사회의 현안을 향해 뛰쳐나왔다. 국채보상운동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했고, 봉건적 신분 질서의 청산과 그를 통한 전민족적 구국운동을 진행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일생을 통해 불의에 맞섰고 권력과 타협하지도 않으셨다.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전율이 느껴지고 깊이 감화된다. 선생님의 인생은 ‘불요불굴(不撓不屈)’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갈대가 아니라 웅혼하게 솟아있는 산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갈대처럼 살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산을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심산(心山), 우리의 마음도 산과 같아야 한다.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갈대와 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11/20181126.01024074438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