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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란 때마다 일어섰던 대구경북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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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독립운동 100년사

20190301
1919년 3월8일 대구에서 처음 일어난 3·1만세운동을 위해 당시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 신명여학교, 대구고보(현 경북고) 학생들이 서문시장(현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모이기 위해 올랐던 중구 동산동 제일교회와 동산아파트 담벼락 사이 ‘3·1만세운동길 90계단’. <영남일보 DB>

대구경북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역사의 발자취엔 늘 대구경북이 중심에 서 있었다. 3·1대한독립만세운동을 벌인 지 올해로 100년째를 맞아 대구경북의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 시·도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독립운동사는 구한말 의병투쟁→애국계몽운동→국채보상운동→비밀결사조직투쟁→3·1만세운동→해외항일투쟁 등으로 정립될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항일투쟁사에서 대구경북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항일의병투쟁, 비밀결사단 조직 등은 대구경북이 시발점이 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원동력이 됐다. 배한동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망국의 충격으로 모두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일제강점기의 대구는 의병, 애국계몽, 국채보상, 비밀결사 등 항일투쟁의 중심에 섰다”고 했다.


국권 뺏긴 나라 위해 일어난 의병장들의 고향
# 의병투쟁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그의 봉기는 의병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의병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기록된 문구다. 여기서 그는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구한말 최초의 의병장인 문석봉 지사를 일컫는다. 문익점의 후손이기도 한 문 지사는 1895년 을미사변이 터지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공주 유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조선 후기 최초의 의병인 ‘유성 의병’이다. 문 지사 생가 터가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5에 있다.

1908년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한 의병부대인 ‘삼남의진’을 이끈 선봉장 우재룡 지사도 고향이 대구 달성이다. 우 지사는 팔공산 동화사에 근거지를 두고 일제에 항거했으며, 훗날 ‘대한광복회’의 결성 멤버로 지휘장을 맡아 무장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우 지사의 장남 우대현씨(75)는 지금도 대구에서 살고 있다.


의무교육 주창 광문사·이상화 길러낸 우현서루
# 애국계몽운동


대구의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한 단체는 1906년 1월 설립된 ‘광문사’다.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계몽운동가인 김광제가 사장을 맡고, 재정적인 뒷받침을 위해 서상돈이 부사장을 맡았다. 출판사인 광문사는 국민에 대한 의무교육을 주창하며 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경북도관찰사에게 ‘낙육재’(경상감영 교육기관)와 ‘양사재’(유생들의 기숙사)에 보통학교를 세울 것을 청원했다. 또 경북지역 41개 모든 군에 학교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광문사 터는 대구 중구 북성로 19-1이다. 대구수창초등학교 후문 주변으로 현재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광문사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1904년 설립된 대구 최초의 도서관이자 학교 기능을 한 ‘우현서루’도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지였다. 이상화 시인의 큰아버지이자 부자였던 이일우가 현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자리에 세웠다. 민족시인 이상화는 물론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등이 우현서루에서 배웠다.


대구서 시작, 국권 회복 위한 평화·자발적 운동
#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1907년 2월21일 대구 ‘북후정’(현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서 열린 군민대회에서 광문사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 등 13명이 발기인으로 나서 ‘국채 1천300만원 보상 취지서’를 격문으로 발표한 게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점이다. 당시 1천300만원의 나랏빚은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였다. 격문은 ‘국채 1천300만원은 우리 대한제국의 존립과 직결된 것이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갚지 못하면 곧 망할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다. 2천만 동포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한 사람당 매달 20전씩 거둔다면 1천300만원을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에 김광제 사장 등은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당장 없애고 금연운동을 주도할 ‘단연회’를 발족한다. 국채보상운동은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 소식을 들은 고종도 금연을 선언하는 등 황실까지 가세하면서 국채보상운동은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거국운동으로 승화됐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끝내 좌절됐지만,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되살리기 위한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자주자강 운동이라는 점, 대구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회의 발생지 대구
# 비밀결사조직투쟁


대구에서 결성된 비밀결사조직을 말하자면 대한광복회를 빼놓을 수 없다. 1915년 8월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운동단체다.

경기도, 황해도, 함경도 등에 이어 중국까지 뻗어나가 만주 길림 광복지회장인 백야 김좌진 장군까지 배출했다. 비밀·암살·폭력·명령이란 4대 행동강령을 두고 일제에 무력으로 맞섰다. 주로 군자금을 마련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립전쟁은 광복회의 설립 취지이기도 하다. 이에 광복회는 일본의 우편마차를 습격해 세금을 탈취하는가 하면 일본인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하던 광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자체적으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의 자산가를 파악하고 통고문을 작성해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공백을 메우는 한편 민족의 염원이 3·1만세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 차례 3천여명 운집…태극기와 만세로 가득
# 3·1만세운동


대구에서 만세시위는 1919년 3월8일 서문시장(현 중구 오토바이골목 일대)에서 처음 일어났다. 이날은 평양, 강경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인 서문시장의 장날이었다.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 신명여학교, 대구고보(현 경북고) 학생들이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고 일제에 들키지 않기 위해 동산병원 선교사 주택단지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이 바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제일교회와 동산아파트 담벼락 사이 ‘3·1만세운동길 90계단’이다. 학생들은 이어 동산을 거쳐 지금의 오토바이골목 자리인 서문시장에 집결했다. 1천여명에 이르는 학생과 시민들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서문로를 걸어 대구경찰서(현 중부경찰서)~만경관~종로~약전골목 대남한의원 네거리~옛 중앙파출소~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 일대)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총과 칼로 무장한 일제의 무력 앞에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고, 무자비하고 가혹한 진압에 수많은 사람들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하지만 대구시민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10일에 이어 20일 3차 시위에서 2천여명이 남문시장에 운집해 태극기와 만세소리로 달구벌을 가득 메웠다.


해외서 계속 투쟁…임정 고위인사 다수 배출
# 해외항일투쟁


대구경북 출신 독립투사들은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상해 서로군정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쿄조선인유학생회,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 등 중국·일본·미주지역에서도 대한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다.

임시정부에선 고령 출신의 남형우가 법무차장, 법무총장, 교통총장을 지냈다. 칠곡 출신의 장건상도 외무차장을 맡았다. 신명여학교 제1회 졸업생인 이희경은 하와이로 건너가 영남부인회를 만들고 독립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김명환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대구경북은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의 산실과 같았다. 지역의 독립운동역사를 재조명하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선양사업을 활발히 펼쳐 애국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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