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않다
엘리트 권력층에 맞서 살아가는 청년들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지말라’ 등
한국사회에 바라는 6가지 공정함 제기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를 홍보하는 문구가 적힌 갑티슈에 ‘14개 수성구 명문 초중고- 시작이 다른 아이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신간 책 소개 기사를 쓰기 위해 회사 책상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갑티슈 두개를 봤다. 하나는 대구 수성구 지역 아파트를 광고하는 갑티슈(수성구 갑티슈), 다른 하나는 비(非)수성구 지역 아파트 광고 갑티슈였다. ‘수성구 갑티슈’에 적힌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14개 수성구 명문 초중고-시작이 다른 아이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뒷면엔 ‘명문대로’라는 문구와 함께 수성구 지역의 자칭 ‘명문 초·중고’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 중심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대구에선 일반적으로 수성구에 부유층이 모여 살고, 교육환경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성구의 또다른 아파트 홍보 문구는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을 산다’이다. ‘시작이 다른 아이들’과 한몸처럼 연결된다.
‘시작이 다른 아이들…’ 그 문구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최근 우리 사회가 아프게 자각하고 목도하기 시작한, 바로 그 문구다. 우리 사회는 ‘시작이 다른 아이들’이 ‘시작도, 끝도 다른 어른들’로 이어진다. 그나마 있던 ‘개천에서 용나는’ 기회는 사라지고 있고, 계급은 세습된다.
‘시작이 다른 아이들’ 문구에 대한 반응은 세대와 개인별, 케이스별로 다른 것 같다.
박원익·조윤호 지음/ 지와인/ 328쪽/ 1만5천800원 |
‘불공정’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는 케이스가 있다. 이런 케이스도 세부적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워낙 우리 사회의 불공정이 만연한 탓에 포기하고 순응하게 된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불공정한 사회에서 특권과 반칙을 누려온 탓에 불공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케이스도 있다. 후자 쪽은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불공정한 사회의 문제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해야 하니까. 그들과 섣불리 논쟁을 하려 하다가는 끝없는 자기 합리화와 설교, 궤변이 투하될지 모른다.
또다른 케이스는 사회의 불공정에 대해 속으로 반발하지만, 억눌려왔던 세대 혹은 케이스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편법을 인지하고 분노했지만, 소극적인 반발에 그치곤 했다.
5년 전 기자가 국내 한 로스쿨의 편법적 운영에 대해 고발성 기사를 썼을 때도, 생각보다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로스쿨 교수 몇명이 징계를 받는 선에서 끝났다. 지역 기자상도 그 기사는 비껴갔다. 해당 상(賞)의 권위와 신뢰도에 대한 회의가 있어 아쉽진 않았지만, 당시엔 불공정과 편법 문제는 그리 큰 화두가 안된 것 같아 그 점이 씁쓸했다.
하지만 기자보다 젊은 세대는 다른 것 같다. 공정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불공정에 대해선 강한 냉소와 비판을 보내고 있다.
신간 ‘공정하지 않다’(지와인)는 이같은 젊은 세대들의 성향을 반영한듯 제목부터 분명하고 직설적이다. 돌려 말하지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저자(박원익·조윤호)들은 기성세대가 아닌 ‘90년대생’ 청년들의 시각에선 이 사회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이야기한다. 즉 ‘달라진 세대, 달라진 시대’를 고찰한다.
‘돈도 실력인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자신도 지키지 못한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말자’ 등 소제목들도 시원시원하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90년대생이 마주한 가장 심각한 갈등은 무엇인가. 그것이 세대갈등이고 젠더갈등이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인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평등과 자유를 막고 있는 ‘불평등’이다. 이 불평등은 곧 세습자본주의를 의미하며 90년대생들이 할 일은 세습자본주의와의 싸움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대로 이어가려는 특권층 엘리트 권력층과 싸우는 것이 공정세대가 벌여야 하는 진짜 싸움이다.”
저자들은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금의 이 사회·정치적 혼란도 해법을 찾아가는 한 과정이길 바란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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